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논의해온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결국 단일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정부와 국회에 권고하는 3개의 복수안만 내놓고 활동을 종료했다. 작년 10월부터 논의에 들어갔지만, 사실상 아무 진전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정부와 국회에 공을 떠넘긴 것이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내세워 경사노위 논의를 진행했으나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연금개혁의 장기 표류가 불가피해졌다.
연금특위는 2028년까지 40%로 낮아질 소득대체율을 45%로 고정하고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0년 동안 12%로 올리는 ‘가’안(다수안)과, 소득대체율 40%와 보험료율 9%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안, 소득대체율 40%에 보험료율을 즉시 10%로 인상하는 ‘다’안을 제시했다. 당초 정부가 내놓았던 4가지 개혁안과 다를 게 없다. 조금 더 내고 더 받는 ‘가’안을 노동계가 지지한 반면, 경영계는 기업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며 반발했다.
모두 개혁과 거리가 멀다. 다수안도 연금고갈 시기가 2063년으로, 지금 제도를 유지할 때 연금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는 2057년보다 6년 정도 늘어날 뿐이다. 나머지 ‘다’안의 경우는 2060년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개혁의 가장 큰 목적은 재정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연금기금 소진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방안도 제도개선 효과가 미미하다.
문제는 경사노위가 제시한 다수안도 채택되기 힘들다는 데 있다. 국회의 논의 자체를 기대하기 힘들다. 여당부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를 더 내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사노위의 단일안이 나오지 않자, 개혁안 처리의 부담을 덜었다며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게다가 여건이 너무 좋지 않다. 경기가 갈수록 악화하고, 기업의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한 건 2017년 말부터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8월 보험료율을 11∼13%로 올리는 개편안을 마련했으나, 청와대가 국민부담을 키우는 보험료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수정안이 경사노위로 넘겨졌지만 논의는 계속 헛돌았다. 시간만 끌면서 진전이 없었고, 개혁은 멀어지고 있다. 정부의 연금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 개혁은 조금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를 위한 최후의 안전판이다. 무엇보다 안정성을 높이고, 수익성 제고가 다급한 이유다. 하지만 안정성은 위협받고 있고, 기금운용 수익성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연금 지급액은 급증하는 추세다. 이대로는 예상보다 일찍 기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만 키울 뿐이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국민연금 개혁은 애초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