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자금 80%가 차입금...투자자 모집 차질에 재매각 추진
“국내에선 실패하면 재기하는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창업에 실패하면 개인과 가족이 모두 파산하죠. 국내 중소기업과 청년, 사회에 한 번 실패한 기업도 성공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아름다운 도전은 성공한 듯 보였다. 이 선언 이후 5개월 만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코웨이를 다시 품은 것이다. 2013년 계열사의 위기가 그룹 전체에 퍼지는 과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코웨이를 떠나보낸 지 6년 만이다. 하지만 이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리한 인수 과정에서 생긴 부담이 컸다. 윤 회장은 지금 코웨이와 또 한 번의 이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침체했고, 국내 주택시장도 얼어붙었다. 건설업계에서도 불황이 시작됐다. 극동건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른 건설사들과 마찬가지로 재정난에 빠진다. 2007년 373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은 1년 만에 99억 원으로 줄어들었고, 2009년에는 91억 원 적자전환했다. 2011년에 적자 규모는 1979억 원까지 불어났다. 그해 말 극동건설의 유동부채는 9073억 원으로 9895억 원인 유동자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 과정에서 웅진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는 극동건설을 살리고자 자금을 풀었다. 웅진홀딩스는 2011년 유상증자를 통해 극동건설에 1000억 원을 출자했고, 이후 1년여간 5차례에 걸쳐 약 1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빌려줬다. 2012년 상반기 웅진홀딩스는 극동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채무를 연대 보증해주기도 했다. 그 규모가 1조 원을 넘겼다. 당시는 극동건설의 부도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극동건설의 ‘심폐소생’은 끝내 실패했다. 2012년 9월 25일 부도가 났다. 바로 다음 날 극동건설과 웅진홀딩스는 동시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다음 달 11일 법원은 웅진홀딩스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회생 과정에서 웅진그룹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알짜 계열사’들을 하나둘 매각했다. 해가 지나 2013년 1월 웅진홀딩스는 웅진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한다. 2월 법원은 회생계획을 인가하고, 9월과 11월 각각 웅진식품과 웅진케미칼을 한앤컴퍼니와 도레이첨단소재에 넘겼다. 이와 동시에 윤 회장 일가는 두 차례의 사재 출연으로 7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하면서 웅진은 2014년 2월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회생에 들어간 지 16개월 만의 ‘조기 졸업’이었다.
◇‘재기’의 움직임… 코웨이 재인수까지 = 회생이라는 ‘상흔’ 뒤 웅진에 남은 계열사는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북센 △웅진플레이도시 △오션스위츠 △웅진투투럽 △렉스필드컨트리클럽 등 7개뿐이었다. 사실상 웅진의 모태인 교육·출판업과 태양광 사업만이 남은 셈이다.
윤 회장은 웅진그룹 재건의 발판으로 태양광 사업과 정수기 렌털 사업에 집중했다. 웅진에너지는 태양광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자산을 하나둘 인수했다. 웅진에너지는 2016년 8월 SKC솔믹스로부터 잉곳 성장로와 웨이퍼링 장비 등 태양광 사업 자산을 사들였다. 2016년 6월에는 GS그룹의 계열사 GSE&R솔라에서 웨이퍼 생산용 공장을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웅진에너지는 잉곳과 웨이퍼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조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이와 동시에 해외에서 정수기 렌털 사업이 이뤄졌다. 웅진코웨이 매각 당시 ‘5년 겸업 금지’ 조항에 합의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관련 사업을 할 수 없었다. 2015년 6월 웅진에버스카이를 만들고, 터키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한국형 정수기 렌털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웅진’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 윤 회장은 코웨이를 다시 사들여야 했다. ‘5년 겸업 금지’ 조항 시효가 끝난 다음 날인 2018년 1월 3일 윤 회장은 정수기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고, 동시에 코웨이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2019년 3월 22일. 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한 지 6년 만에 웅진그룹은 ‘웅진’코웨이를 되찾았다. 웅진씽크빅이 총 2조 원을 들여 코웨이의 지분 약 25%를 사들이는 식으로 인수가 진행됐다. 웅진그룹 자산은 2조5000억 원에서 4조5000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웅진씽크빅, 웅진 렌털의 방문판매 인력(1만3000명)과 코웨이 인력(2만 명)을 합쳐 3만3000명의 방문 판매망을 구축했다. 이렇게 웅진은 ‘흑역사’를 떨쳐내고 회생에 성공하는 듯 보였다.
◇다시 찾아온 위기… 3개월 만에 또 매물로 = 위기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무엇보다 성급했다. 충분한 현금도 없이 인수를 밀어붙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80%. 웅진그룹의 코웨이 인수자금 중에 차입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총 2조 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중 1조1000억 원은 인수합병을 위한 대출이었다. 5000억 원은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었다. 자체로 마련한 것은 4000억 원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웅진그룹의 자금 조달에 ‘빨간불’마저 켜졌다. 5월 웅진에너지가 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3월 한영회계법인이 웅진에너지의 지난해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 의견을 낸 여파다. 웅진에너지는 상장폐지 갈림길에 선 동시에, CB 등에 기한이익상실 사유 등이 발생하면서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후 웅진그룹의 신용등급이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떨어졌다. 웅진에너지발(發) 웅진그룹의 신용도 하락은 부메랑이 돼 웅진씽크빅으로 돌아갔다. 당초 5000억 원을 발행하기로 했던 CB 투자자 모집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6월, 웅진그룹은 코웨이를 사들인 지 3개월 만에 재매각을 결정했다. 지난달 마감된 예비입찰은 흥행했다. 국내 대기업인 SK네트웍스를 포함해 중국계 가전기업 하이얼,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 등 7곳 정도가 인수의향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큰 규모의 방문판매 조직과 안정적인 실적 등 코웨이는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매각 주관사는 그중 SK네트웍스와 중국 하이얼-린드먼아시아 컨소시엄,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칼라일그룹과 베인캐피털 등 4곳을 적격 예비인수 후보(쇼트리스트)로 선정했다. 25일 본입찰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