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율이 최대 100%에 이르는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다. 전국 양돈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경기도 파주의 한 양돈농장으로부터 16일 돼지 5마리의 폐사 신고를 받고, 정밀조사 결과 ASF가 양성 확진됐다고 17일 밝혔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ASF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해당 농장주와 가족이 소유한 3개 농장의 돼지 3950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전국 양돈농장, 도축장, 사료공장 출입 차량 등에 48시간 동안 일시 이동중지명령이 내려졌고, 경기도 돼지의 다른 지역 반출도 일주일 동안 금지됐다. 전국 6300여 양돈농가에 대한 일제 소독, 의심 증상 예찰도 진행키로 했다. 농식품부는 앞으로 일주일이 ASF 확산의 고비로 보고 있다.
ASF는 바이러스로 감염되는 1급 가축전염병으로 사람에게 옮겨지지는 않아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돼지는 한 번 감염되면 고병원성의 경우 거의 모두 폐사할 만큼 치명적이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약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사실상 무방비의 상태로, 감염된 돼지는 살처분 말고 달리 대응 방안이 없다. 이 병은 작년 중국과 베트남, 몽골 등에서 발생한 이후 올해 5월 북한으로 번졌다. 파주의 ASF도 농장이 접경지역에서 불과 1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야생 멧돼지 등을 통해 북한에서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자칫 ASF가 확산되면 전국 양돈농가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전국에서 사육되는 돼지 1200만 마리가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살처분 돼지가 늘면 돼지고기 값도 크게 오를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에서는 올해에만 전체 사육 돼지의 20% 정도가 살처분됐고, 병이 크게 번진 이후 돼지고기 값이 40% 이상 급등했다.
ASF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초기의 철저한 방역이 가장 중요하다. 돼지는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가둬 키우는 특성상 한 마리만 감염되어도 순식간에 모든 돼지로 퍼진다. 초기방역에 실패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국내 축산농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구제역(口蹄疫)의 경우 2010∼2011년 방역실패로 전국 11개 시도에서 무려 348만 마리의 소·돼지가 살처분되고 3조 원 규모의 엄청난 피해를 입는 대란(大亂)이 일어났다. 가축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토양과 지하수까지 오염되는 2차 재앙까지 빚어졌다. 2014∼2015년에도 구제역으로 17만여 마리의 가축이 희생됐지만, 2017년 다시 번지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
정부는 비상한 대응체제로 양돈농가에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빈틈없는 방역관리와 예방조치 강화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허술한 대응으로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 또 과거 구제역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