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브로커의 덫] ‘깡통 사무실’ 만들어 月 억대 순익...걸려도 ‘남는 장사’

입력 2019-09-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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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월급 주는 브로커…수십 곳 분산운영, 적박땐 꼬리끊기

하이에나 무리가 서울 서초동 법원 골목을 배회한다. ‘회생 브로커’라는 이름의 하이에나 무리다.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신용불량자’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당장 돈이 궁한 변호사·법무사는 브로커와 한배를 탄 지 오래다. 수사기관도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단속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빚의 늪’에 빠진 신불자들은 서초동 하이에나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회생 브로커’들은 크게 조직적·장기적으로 운영되는 브로커와, 일시적·소규모로 활동하는 브로커로 나뉜다. 업계에서는 후자를 ‘보따리 사무장’이라는 은어로도 부른다.

어떤 형태의 브로커든 기본적으로 변호사, 또는 법무사와 ‘동업 관계’를 유지한다. 법률사무소의 정식 사무장 같은 경우 변호사와 고용계약을 맺지만, 브로커는 정반대다. 변호사에게 명의를 빌려 직접 사무소를 운영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의 일부를 변호사에게 배분한다. 일반 사무장이 직원으로서 변호사에게 월급을 받는다면, 반대로 브로커의 경우 변호사가 매달 돈을 받는 셈이다. 한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은 “사무장과 브로커의 업무는 사실상 같지만 수익은 천지 차이”라며 “솔직히 이럴 바에 차라리 브로커 활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전국·조직적 활동하는 브로커들… ‘허위’ 사무실들로 위험 분산 = 장기·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는 보통 ‘국장’이라는 직책으로 활동을 한다. 국장은 자격증을 갓 딴 변호사·법무사나, 반대로 연차는 많지만 실력이 변변치 않은 변호사·법무사에게 접근한다. 사무소, 또는 법무법인을 차려주고 “매달 얼마씩을 줄 테니 명의만 빌려달라”는 식으로 제안을 한다. 법무법인 소속의 한 사무장은 “명의대여의 대가로 월 최소 300만 원 정도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이상도 준다”고 귀뜸했다.

명의를 확보한 브로커는 법률사무소를 차린 뒤, 곳곳에 여러 사무실을 마련한다. 오피스텔에서 임대한 허위 사무실들이다. 직원 2~3명 정도를 상주시키며 관련 업무를 보게 한다. 한 사무장은 “큰 조직 같은 경우는 수십 개의 사무소를 거느리고 있다”며 “서류들을 적절히 분배해 만약 적발될 경우에도 다른 사무실들은 타격을 받지 않도록 조치를 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전국 각지에서 ‘출장 사무장’도 고용한다. 일종의 별동대다. 이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활동하며 사건을 수임해온다. 다른 사무장은 “출장 사무장들이 있는 조직은 ‘전국 무료 상담 가능’이라는 문구를 내세운다”며 “이런 곳은 전부 브로커 사무실이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브로커 조직 운영의 한 축에는 인터넷 홍보업계도 있다. 회생업계의 성패는 회생·파산을 원하는 채무자들의 데이터베이스(DB)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이 DB를 확보하는 데 수천만 원의 돈을 아끼지 않는다. 대규모, 조직적으로 회생·파산만 전담하는 만큼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회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다루는 일반 법률사무소, 법무법인들은 이 DB 확보 경쟁에 끼어들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작년부터 회생·파산 쪽을 다루려고 공부도 하고 광고도 했다”면서도 “최근 광고 단가가 오르면서 수지가 맞지 않게 됐다. 사실상 손을 뗀 상태”라고 토로했다.

가장 많이 쓰이는 DB 확보 방은 홍보대행업체나 재택알바 업체에 위탁하는 것이다. 브로커 사무소와 계약을 맺은 업체에서 네이버 블로그나 SNS에 홍보성 글을 올리고, ‘지식 IN’에 사무소를 소개하는 답변을 다는 식이다. 글 속에 적힌 상담 신청 링크를 누르면, 브로커 사무실로 연결되는 구조다.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재택알바를 통해 얻는 DB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헬로드림, 리얼알바 등 재택알바 업체는 수많은 ‘알바생’들을 거느리며 홍보업무를 하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의 마케팅 관계자는 “재택알바 업체의 경우 문어발식으로 사람을 구해 홍보업무를 맡긴다”며 “알바들에게는 홍보해주는 업체가 브로커인지, 정식 사무실 직원인지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는 같은 광고를 하는 법률사무소 이름이 문제가 생겨 두세 번 바뀌는 경우도 있는데, 재택 알바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홍보 글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대부업체나 추심업체로부터 DB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올 초 고용했던 사무장이 뜬금없이 ‘DB 좀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라며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연체가 오래 이어지거나, 채무 상환이 어려울 것 같은 사람들의 정보를 브로커들에게 돈을 받고 넘기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대부업체나 캐피탈 등은 수임료 연계 대출로 브로커와 관계를 맺기도 한다. 수임료를 내기 어려운 의뢰자에게 대부업체를 소개해 대출을 받도록 하는 대신, 건당 몇만 원씩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마케팅 관계자는 “일부 브로커는 아예 캐피탈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다. 신고만 하면 대부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며 “이렇게 캐피탈까지 낀 구조가 브로커 조직의 완성체”라고 말했다.

◇월 순수익 ‘억’대… 적발돼도 추징금 ‘껌값’ =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들의 월 순익은 수억 원대에 달한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광고료나 사무소 임대료, 직원들 월급 등 비용을 모두 제하고 남는 것이 이 정도다. 이렇게 높은 수익성은 일반 사무장들이 브로커로의 전향을 고려하는 가장 큰 유혹이다. 잇따른 적발에도 브로커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활개를 치는 배경이다.

여러 사무소로 분산된 구조 또한 브로커가 생명력을 이어가는 방식 중 하나다. 만약 경찰에 적발되는 경우에도 조직 전체가 아니라 한 사무소만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실형을 받더라도, 나머지 사무소들은 아무 지장 없이 영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만약 추징금 수준에서 끝난다면 그들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의 추징금이 붙는다고 해도 월 수익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무소 하나는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다. 적발돼 봤자 일부 중에 극히 일부만 잡히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먹고 한 번에 모든 조직을 다 들쑤시지 않는 이상 브로커가 근절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조직적 브로커가 있는 한편, 일시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들도 있다. 이들은 ‘떴다방’ 식으로 활동을 해 ‘보따리 사무장’이라는 은어로도 불린다. 보따리 사무장들은 특정 지역을 골라 반짝 회생·파생 업무를 처리한다. 1~2명 등 소규모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해당 지역의 평균적인 수임료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 의뢰인들을 최대한 모아 한 번에 큰 수익을 내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일부 보따리 사무장은 수임만 하고 회생 사건은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먹튀’ 사무장이다. 한 사무장은 “회생 개시를 받았다고 해도 추가 절차가 있을 수 있다”며 “브로커가 먹튀를 한 경우 최악의 경우 회생이 기각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회생을 다시 신청하기 위해 우리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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