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금융부장
야당의 전선은 더욱 명확하다. 조 장관을 향한 자유한국당의 파상공세와 이를 정쟁으로 규정하며 조 장관을 보호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이 맞부딪치며 8일 금융감독원 국감도 ‘민생 국감’을 외면할 듯 싶다.
앞서 DLS 사태는 대규모 원금 손실에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안인 만큼 이번 정무위 국감에서 해당 은행들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들어봐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앞서 금감원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관련 중간 검사 결과 발표는 우리 금융시장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금융회사와 직원, 투자자들은 리스크에 대한 불감증에 부나방처럼 고수익 상품에 뛰어들었다. 금융당국은 시장의 안정을 뒤로하고 감시망은 작동하지 않았다. 은행·증권·자산운용사들은 투자 리스크에 대한 면밀한 검증을 생략한 채 고위험 상품을 ‘설계-제조-판매’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심지어 투자 위험을 경고하며 반대한 회사 내 상품선정위원을 교체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은행들은 독일 국채금리가 하락해 손실 규모가 커지는 상황인데도 투자자에게 위험을 경고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품 구조까지 바꿔가며 DLF를 지속적으로 판매했다. 원금 손실 위험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금리에 투자하라’는 광고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송했다. 투자자 성향 설문을 하지 않고 직원이 임의로 입력하는 등 불완전판매도 일삼았다.
은행직원들이 고객 이익보다 자신의 실적을 위해 무분별한 판매 경쟁에 뛰어든 정황도 뚜렷했다. 판매액이 클수록 평가가 좋아지는 인사고과시스템 탓에 은행 창구에서는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이 ‘이자를 더 주는 예금’으로 둔갑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잔존 3954개 DLS 계좌를 전수조사한 결과,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가 20%에 육박했다. 특히 고령 투자자들은 제1금융권이 안전하다는 믿음 속에 은행 말만 듣고 돈을 맡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따라서 은행이 투자자 연령, 재산, 투자 성향을 꼼꼼히 파악하고 동의를 구했는지, 아니면 불완전판매를 했는지 살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고, 투자자의 책임 역시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 리스크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거액을 집어넣은 투자자들의 책임이 전부 면책되기는 어렵다.
‘만기상환확률 100%, 원금손실률 0%’ 등 안전한 고수익 상품으로 권유받았다지만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이 자칫 큰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 가장 기본적인 금융상식이다. 100% 면책만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금융회사의 사기적 수법에는 철퇴가 가해져야 하지만, 무조건적인 투자자 보호를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키코·동양그룹·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 그간의 반복적인 사고에서 감독 부실의 책임이 크다. 저금리 시대에서 소비자들은 0.1%포인트라도 수익을 더 주는 투자 상품을 찾기 마련이다. 금융 사고의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금융당국발(發) 소비자 경보는 지난해 8월 이후 한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그 사이 DLS는 불티나게 팔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무위가 DLF 사태와 관련해 확정한 일반증인은 단 한 명뿐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임원은 증인으로 소환되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 간에 조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의 위법성을 놓고 공방이 벌어지면서 증인 채택도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조 장관 관련 의혹은 철저히 규명돼야 하고, 검찰 개혁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그게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보살피는 일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국감의 무게중심이 조 장관 일가가 연루된 소위 ‘조국펀드’로 기울어지면서 DLF 사태가 수박 겉핥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다. 여야 정쟁에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 판매 의혹까지 제기되는 민생 이슈의 무게감이 너무 가벼워졌다.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자던 금융소비자보호법 역시 국회 통과가 요원하다.
a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