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선 유통바이오부 기자
지난해 2월 ‘운명의 날’을 앞둔 신동빈 롯데 회장은 태연했다. 국정농단과 경영비리 사건 1심에서 신 회장은 무죄를 내다보며 선고 후 치러질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과 폐막식에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63번째 생일도 평창에서 맞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신 회장은 구치소에서 생일을 보내야 했다. 8개월을 구치소에서 지낸 신 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후 1년 만에 다시 심판대에 선다. 대법원은 17일 이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내린다. 신 회장은 이번에도 다음 행보를 계획하며 태연하게 선고를 기다리고 있을까.
신 회장이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해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지원한 뇌물공여 혐의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그런데도 1심은 실형, 2심은 집행유예로 형량이 달랐던 이유는 1심은 신 회장이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기대하고 능동적으로 뇌물을 건넸다고 봤지만, 2심은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고 이를 양형 이유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2심 재판부는 신 회장을 뇌물 공여자인 동시에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봤다.
대법원은 혐의의 유무죄를 판단할 뿐 형량에 관해선 판단하지 않는다. 1·2심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에서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도 상고심은 2심 집행유예 선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강요에 의한 피해자’ 논리가 합당한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원심과 같이 집행유예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주변의 전망이다.
‘강요에 의한 피해자’ 논리로 집행유예가 확정된다면, 기업에 주는 메시지는 참담하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기보다 위험하지만 쉽고,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뇌물공여라는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 이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신 회장이 17일 선고를 태연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