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헤리티지 담아 로고 디자인 바꿔…밀레니얼 세대 겨냥 서브라인 '890311'도 출시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6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았다. ‘아재’ 이미지로 내리막길을 걷던 ‘휠라’를 벼랑 끝에서 부활시킨 정 디렉터가 이번에는 서른 살이 된 삼성물산의 전통 브랜드 ‘빈폴’을 다시 써내려간다.
15일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에 있는 일진전기 공장에서 열린 ‘빈폴, 다시 쓰다’ 프로젝트 기자간담회에서 정구호 디렉터는 “낡은 이미지를 벗고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담아 빈폴이 새롭게 탄생했다”며 “기존 고객층뿐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까지 끌어안겠다”며 이번 빈폴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이번 브랜드 리뉴얼의 가장 큰 특징은 ‘밀레니얼’을 겨냥한 젊은 브랜드의 탄생이다. 이를 위해 빈폴은 탄생일인 ‘팔구공삼일일(890311)’이라는 서브 라인을 론칭한다. 정 디렉터는 “빈폴을 잊어가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그들의 취향에 맞게 스트리트 캐주얼 느낌으로 팔구공삼일일 라인을 만들었다”며 “가격대도 기존 빈폴보다 10~15%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말했다.
빈폴은 이번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해외 진출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다. 간담회가 진행된 일진전기 공장에는 빈폴맨, 빈폴레이디스, 빈폴골프, 빈폴액세서리, 팔구공삼일일 등 5개 브랜드 매장이 마련됐으며, 18일까지 해외 바이어를 초청해 새롭게 탄생하는 빈폴을 소개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측 관계자는 “이 공간을 선택한 것은 정구호 디렉터의 요청이다. 버려진 건물이 새롭게 꾸며지는 과정을 통해 기존 빈폴의 이미지가 완전히 탈바꿈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 전략적으로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담회에 동석한 박남영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상무)은 “현재 빈폴은 중국 사업을 유일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에 리뉴얼 론칭에 해외 바이어를 모셔 해외 진출 구상을 하려고 한다. 유럽, 미국, 아시아 등을 구분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도전할 계획”이라며 “국내 시장은 과거처럼 성장이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구호 디렉터와 삼성물산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복 ‘구호’를 만든 정 디렉터는 2003년 삼성물산 패션 부문(당시 제일모직)에 구호를 매각하고 10년간 삼성물산 여성복 사업부의 디자인 총괄로 재직하다 퇴사했다. 이후 6년 만인 올해 2월 삼성물산과 빈폴 리뉴얼 작업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다른 브랜드처럼 해외 디렉터와 손잡고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알고 빈폴의 기존 이미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과 함께 하고자 정구호 디렉터와 협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빈폴 리뉴얼의 미션은 한국의 정서, 문화, 정통성을 브랜드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정 디렉터는 “1989년 3월 11일 출시한 빈폴은 때로는 영국의 전통을, 때로는 미국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얘기할 때도 있었지만 정작 우리만의 이야기를 담진 못했다”며 “‘우리만의 역사를 담아 우리의 브랜드를 새로 만들 순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번 리뉴얼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헤리티지를 찾기 위해 그는 1960~1970년대를 조명했다. 이를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정 디렉터는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정영수 작가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서양 문물과 문화가 한국 정서에 맞게 토착화되며 만들어진 1960~70년대를 조명해 한국의 정서, 문화,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 한글 디자인뿐 아니라 당시 건축을 모티브로 상품과 매장을 새롭게 꾸몄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유산 ‘한글’을 통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미학을 발견해냈고, 빈폴의 영문 표기를 한글로 바꿨다. 로고인 자전거 디자인도 변경했다. 바퀴가 큰 자전거 ‘페니 파싱(Penny Farthing)’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바큇살을 없앴다. 자전거에 탄 사람의 모습에도 체격, 머리 스타일, 자전거를 타는 각도 등을 동시대적인 디자인을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