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북 경협주를 띄웠던 짐 로저스가 이번에는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graphene) 홍보에 열중하고 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주가는 반응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핀 상용화에 대한 우려와 올해 초 경협 테마주로 묶였던 아난티가 수익 시현에 실패하면서 실망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코스피 상장사 나노메딕스의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그래핀은 경이로운 소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래핀은 종이보다 가볍고 철강보다 견고해 어떤 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며 “자동차나 전기, 인터넷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만큼, 그래핀에 대해서도 향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파이트(graphite)’와 탄소이중결합을 가진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 ‘-ene’가 합쳐진 단어인 그래핀은 흑연에서 탄소층 하나를 박리한 평면 형태의 얇은 막을 뜻한다. 전도성이 뛰어나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전달할 수 있고, 이 때문에 디스플레이,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산업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 대가로 불리는 로저스 회장이 그래핀과 함께 한국 증시에 등장한 건 8월부터다. 소방차 제조업을 영위하던 나노메딕스가 그래핀 업체 스탠다드그래핀에 전환사채(CB) 100억 원을 투자했고, 로저스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한다고 밝힌 것이다. 나노메딕스는 로저스 회장에게 50만 주에 대한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도 부여했다. 이에 시장에선 경협주에 이어 또 다른 로저스 테마주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저스 매직’이 통하지 않는 양상이다. 나노메딕스 주가는 로저스 회장 사내이사로 선임한 그 주 오히려 주가가 12% 가까이 하락했다. 기업설명회 다음 날인 25일에는 주가가 1090원(11.51%) 하락하며 8300원대로 내려앉았다. ‘그래핀 테마주’로 묶이는 국일제지(-5.55%), 엑사이엔씨(-4.73%) 등도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그래핀 테마주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상용화에 대한 우려다. 그래핀 상용화를 내걸고 많은 업체들이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가시적으로 성공한 곳은 찾기 어렵다. 그래핀이 가공하기 까다로운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실험실에서 양질의 그래핀 샘플을 만드는 데까지는 도달했지만, 상용화를 위한 대량 양산 체제를 갖추는 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진성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연구단 연구위원은 “성능이 우수하려면 그래핀이 완벽하게 편 상태에서 유지돼야 하는데 얇으니까 휘어지기 쉽다”며 “휘어지면 물질끼리 붙어버려 제 성능을 낼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업체들이 구현한 기술들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공정과정 내 작은 실수에도 결과가 달라지는 만큼 검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로저스 사외이사 영입 후 급등했다가 큰 폭으로 조정받은 아난티 사례도 불신을 불러왔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1월 3만 원대까지 뛰었던 아난티 주가는 하노이 정상회담이 큰 성과 없이 끝나고, 로저스 회장이 아난티 지분을 4000만 원에 불과한 2000주만을 매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하락세로 돌아서 현재 1만1000원선까지 떨어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