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 확대 기조는 이번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몇 개만 예를 들어보면,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위한 문재인케어 공약에 따라 비급여 항목에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작년부터 아동수당이 도입되었고, 올해 10월부터는 실업급여도 올랐다. 내년부터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40%까지 월 30만 원을 지급하고, 기초생활보장급여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여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에도 혜택을 확대한다. 고교 무상교육도 전면 도입되며, 노인 일자리는 올해보다 13만 개가 추가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런 복지 확대, 어떤가?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못 미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심각한 상황이다. 국민의 삶을 지원하는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더 많은 혜택을 챙겨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장과 복지에 앞으로 몇 년간 재정을 더 많이 쏟아붓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마음이 영 편치 못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그동안 현 정부의 개입이 성장과 복지의 상황을 개선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개악한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영세 소상공인들이 줄이어 가게 문을 닫고, 올해 불평등과 비정규직 비중은 지난 15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며, 일자리 증가폭은 크게 둔화되고 있다. 사실 이런 어려운 상황이야말로 국민의 삶을 보듬는 복지가 확대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역설해주는 근거이다. 그러나 최악의 지표 악화가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인지, 혹은 잘못된 개입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 정부가 나쁜 성적을 가리는 데 급급하지만 않는다면, 문제를 놓고 함께 지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둘째,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은 재정을 쏟아붓겠다면서 가장 골치 아픈 부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정부의 태도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정부는 내년에 복지 확대만이 아니라 경기부양을 위해서도 막대한 재량지출을 늘려 포용적 국가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더 걷지 않고 더 많이 쓰는 비결로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국가 채무를 늘리는 길이다. 국민이 원하는 복지수준, 국민부담 인상 규모, 국가채무 적정수준 중에서 두 개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국가 재정의 ‘트릴레마(trillemma)’ 상황에서, 정부는 현세대가 더 부담하지 않고 더 많이 받으면서 대신 미래 세대로 부담을 전가하는 방법을 당연한 대안인 듯 내놓는다. 니얼 퍼거슨이 ‘위대한 퇴보’에서 지적했듯, 공공 부채를 늘리는 것은 아직 투표권도 없는 미래 세대를 희생시켜 현재의 유권자 세대를 부양하는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로 예측되는데, 이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에나 경험했던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이러니 작금의 경제 현실이 빚내서라도 재정 투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 상황이라고 설명하면 이런 재정 지출 확대가 오히려 정당성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기존에 추진해온 정책들에 문제가 없다면서, 외환위기 수준으로 적자를 늘려가며 당초 계획에도 없던 경제부양 지출을 늘리겠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복지 확대는 필요하다. 정부 역할이 확대되어야 할 여지는 여전히 많다. 그러나 증세 없이도 더 많이 줄 수 있고,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 약속은 그만하면 좋겠다. 단기 부양책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없고,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저출산·고령화 대응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한국에 대한 국제기구들의 권고이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사고하고, 안정성과 유연성의 균형을 도모하며, 미래 세대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인 사회 대타협의 선택지들을 찾아야 한다.
본래 보수는 성장을 중시하고 재정건전성과 효율을 따지는 역할을, 진보는 분배를 강조하고 더 걷어서 더 많이 책임지는 큰 정부의 역할을 주장해왔다. 자신들이 그간 내세우던 입장에 충실하게만 치열하게 논쟁해주어도 지금은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