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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털 같은 옷은 또 어디서 난 거니?”
큰맘 먹고 구매한 인싸템을 개시한 날. 기자의 어머니가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내리신 평이다. 나름 비싼 값을 주고 산 옷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혹평에 꽥하니 소리를 질러버렸다.
“완전 최신 유행템이거든, 이거 핵인싸템이라고!”
‘어글리 슈즈’의 열풍이 ‘어글리 아우터’로 번졌다. 처음엔 “예쁘다”라고 말하기엔 차마 용기가 나지 않던 그 옷이 어느새 “완전 초예쁨”의 대상으로 우뚝 섰다.
후리스, 뽀글이, 양털 재킷 등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 눈앞에 등장한 ‘플리스’다.
플리스는 폴리에스터 표면을 양털 같은 느낌으로 가공한 보온 원단이다. 이 원단으로 만든 상의와 아우터도 플리스로 통칭한다. 몽글몽글한 표면이 양털과 닮아 ‘뽀글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일본식 발음으로 후리스) 기존엔 이 원단이 상의 내피로 사용됐지만, 현재는 겉으로 드러난 플리스 재킷으로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촌스러운 모습에 세련미를 살짝 얹은 이 플리스는 뉴트로(New+Retro; 새로움과 복고의 합성어) 트렌드의 겨울판이라 할 수 있다. 보온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간편함까지 갖춘 플리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
발목이 겨우 보일락 말락 한 김밥 롱패딩이 점령했던 지난해 모습과 사뭇 다르다. 블랙, 네이비 등 다소 어두운색이 대다수였던 롱패딩과 달리 플리스는 화이트, 베이지 등 미색이 많아 거리가 밝아진 듯한 착각까지 든다.
TV와 SNS 속 연예인, 인플루언서의 복장에서도 플리스는 빠질 수 없다. 신상 플리스로 겨울 패션 리더를 자처한 이들의 인증샷은 연일 쏟아진다.
시중의 패션 브랜드들도 자사 연예인 모델에게 모두 플리스를 입혔다. ‘공유 플리스’, ‘조보아 플리스’, ‘김유정 플리스’, ‘신민아 플리스’라 불리는 옷들은 이미 겨울 주력상품으로 홍보되고 있다.
네이버 쇼핑검색어 재킷 부분 역시 플리스, 후리스, 뽀글이, 양털 재킷이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를 점령했다.
플리스와 관련된 상위 검색어는 ‘파타고니아 플리스(후리스)’다. 저렴한 보온재킷으로 기억되던 플리스를 ‘고가 재킷’으로 변신시킨 일등공신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플리스는 유니클로 같은 실용성을 강조하던 브랜드의 저렴한 겨울 재킷이었던 터라, 10만 원대를 넘어서는 가격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게 사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고가의 패션 브랜드도 앞다퉈 플리스를 공개했고, 이에 비싼 플리스의 원조(?)로 인식된 ‘파라고니아 플리스’의 검색 순위가 상위권 노출된 것. 그 외에도 나이키 플리스, 내셔널지오그래픽 플리스, 에인트크랙 플리스, 아키클래식 플리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플리스의 인기는 판매량으로 증명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 ‘부클테크 후리스’는 출시 3주 만에 온라인 공식몰에서 매진됐고, 노스페이스 ‘리모 플리스 재킷’도 온라인 판매 2시간 만에 동이 났다.
NBA의 ‘리버시블 플리스 재킷’ 또한 출시 2개월 만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판매가 늘어났고, 아킬클래식 ‘부클 테크 플리스’는 초도 물량 3000장이 출시하자마자 완판됐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는 플리스 베스트가 전월 대비(10월 22일~11월 5일 기준) 20배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플리스 열풍은 숏패딩 인기와도 궤를 같이한다. 짧아진 아우터의 길이에 약간의 촌스러움이 가미된 ‘어글리 아우터’의 부상이다. 플리스는 단일 아우터로도 활용되지만, 패딩과 코트 안에 받쳐 입기에도 좋아 플리스 숏패딩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이어 ‘어글리’를 조금 더 강조한 근육패딩 뿐 아니라 곰표 밀가루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놓은 ‘4XR 곰표패딩’이 등장해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하기도 했다.
복고, 뉴트로, 어글리가 겨울까지 집어삼켰다. 추운 겨울날, 몸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포근이가 유행이라니… 그 인기에 편승하고 싶은 의지가 마구마구 샘솟는다. 플리스를 겟한 당신. 아재 패션과 어글리 패션 사이 그 어딘가, 핵인싸의 감각을 살짝 훔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