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학교 인문대에 들어서자, 왼쪽 벽에 가득 붙어 있는 대자보와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대자보는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경찰의 과격 진압으로 격화한 것과 관련, 재학생들이 홍콩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는 중국 유학생이 작성한 '홍콩의 폭력적 행위를 지지해선 안 된다'라는 글이 적힌 메모지와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번역기를 돌려 한글로 쓴 탓에 문맥이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다.
홍콩 사태가 국내 대학가의 또 다른 '한ㆍ중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중국 유학생이 한국 학생의 대자보를 무단으로 철거하거나 훼손하면서 갈등이 격렬해졌다. 한양대에서는 이 때문에 최근 육탄전도 일어났다. 한국외대, 고려대, 연세대도 홍콩 사태와 관련해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중국 유학생의 행위가 도를 지나쳤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한양대 경제금융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모두가 동등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절차를 안 지킨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부서 승인받고 게시 기간이 남아 있는 대자보를 뗀 뒤, 그 자리에 승인받지 않은 것을 붙이면 되겠느냐"라고 토로했다.
유사한 일이 발생한 한국외대의 재학생도 중국 유학생의 행동을 지적했다. 한국외대 재학생인 최수진(23) 씨는 "얼마 전 홍콩지지 행사에 중국 유학생들이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면서 "정해진 규칙 내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조롱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중국 유학생들의 과격한 집단행동도 문제 삼았다. 한양대 학생들은 중국 유학생들이 대자보를 떼기 전 50~60명을 모은 뒤 행동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들은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의 얼굴을 찍어 중국 커뮤니티에 공개하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며 흉흉한 분위기를 전했다.
홍콩 시위 지지모임에 참여 중인 한양대 재학생 민재완(22) 씨는 "중국 유학생들의 실력 행사에 대응하기 위해 홍콩 유학생과의 간담회를 열어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각 단과대에 대자보를 붙여 참여를 호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 유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이 '폭도'를 두둔하고 있다 여겼다. 3개월 전 베이징에서 한국으로 왔다는 한 중국 유학생은 "홍콩이 다시 평화로운 곳이 되려면 한국인들이 중국을 지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홍콩도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이 있어선 안 된다"라며 "(한국인이) 중국인들을 싫어해서 홍콩 편을 드는 게 아니냐"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학생 간 한ㆍ중 갈등이 가시화되자 대학교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대학교 교수는 "이러다가 '패싸움'처럼 몸싸움으로 번질까 염려된다"면서 "회의에서 관련 사안을 논의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인들이기 때문에 폭력 행위가 벌어지면 법으로 처벌받겠지만, 학교도 수수방관 할 수 없는 만큼 대응책에 의견을 나눴다"고 덧붙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견해 차이가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정치 활동을 하면 비자가 무효되는 법이 있지만, 사실 정치 활동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면서 "각각의 의사 표현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으로 설 교수는 "투자에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듯이, 대학교에서도 특정 국가의 유학생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소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