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하면서 세계 경제의 공포가 일단 완화됐다. 양국이 21개월간의 대치 끝에 도출한 합의다. 중국이 500억 달러어치의 미국 농산물을 구매하고, 미국은 추가관세 부과 철회와 함께 기존 관세율도 일부 낮추는 것이 골자다. 15일부터 예정됐던 16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15% 추가관세는 부과되지 않고, 1200억 달러어치에 부과돼온 15% 관세율이 절반으로 낮아진다. 하지만 2500억 달러 규모 중국제품에 매겨졌던 25% 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합의에는 중국의 농산물 구매가 이행되지 않으면 관세율이 되돌아가는 스냅백(snapback) 조항도 포함됐다. 미·중 모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카타르 도하포럼에 참석 중인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이 합의가 “역사적”이라며, “글로벌 성장에 매우 좋을 것”으로 평가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전 세계에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침체됐던 글로벌 경제가 한숨 돌리고 미·중 분쟁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분명하다.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수출 부진에서 벗어나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호재(好材)다. 그러나 양국이 잠시 ‘휴전’에 들어간 것일 뿐, 아직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2단계 협상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농산물 등의 수입 외에,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강요 문제 해소, 금융서비스 시장 개방, 통화 및 환율정책의 투명성 등을 약속했다. 미국이 중국의 구조적인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면서 내세워온 핵심 쟁점들이다. 그럼에도 1단계 합의에서 구체적인 실행 조치의 내용이 확실치 않다. 이들 사안은 관세 문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 향후 협상의 순조로운 진전을 낙관하기 힘들다. 우선 급한 불은 껐지만, 미·중 대립이 무역을 넘어 기본적으로 ‘기술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충돌임을 감안하면 분쟁은 다시 점화할 가능성도 높다.
우리 경제는 미·중 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수출의 25% 이상을 중국에 기대고, 이 중 중간재가 80% 가까이를 차지한다.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대 수출상품인 반도체의 시황 악화와 함께, 중국의 경기 둔화로 우리 수출은 작년 12월 이후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중 간 휴전이 우리 수출에 우선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앞으로도 살얼음판이다. 관세는 절반으로 줄이는 제한적 임시조치이고, 양국 간 구조적 갈등요인은 해소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 기조를 계속 가져가겠다는 의지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걸림돌이다. 결국 미·중 간 싸움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구조, 글로벌 경쟁력 중심의 경제체질을 다지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