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톨릭대 바이오메디대학 교수
“밀가루를 이용하여 쌀밥 못지않은 주식을 개발할 수는 없을까?”
안도가 닛신식품(日淸食品)의 전신인 산시쇼쿠산((中交總社)이라는 식품회사를 설립하고 최초의 즉석라면을 만든 1958년, 이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밀가루는 부침, 빵, 국수를 만드는 것 외에는 달리 사용처가 없었고, 누구도 밀가루의 새로운 용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밀가루 식품 개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고, 보관성이 우수하면서 누구나 손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식품이 필요해!” 안도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오직 밀가루에 파묻혀 살았다. 한 달 그리고 두 달. 시간은 흘러갔고, 끈질긴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언제나 실패뿐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안도는 그동안 쏟아부은 연구비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거듭되는 실패에 의기소침해져 자살 직전에까지 몰렸다. 매사에 의욕을 잃은 그가 찾아가는 곳은 오로지 술집. 매일같이 술에 취해 살다보니 어느 사이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술집을 찾았다. 술집 주인은 어묵을 기름에 튀기고 있었다. 순간 안도의 눈은 반짝 빛나며,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로 저것이다!” 안도의 탄성에 술집 주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결국 미쳐버렸군. 안됐어. 저만큼 쓸 만한 사람도 흔치 않았는데…”
안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집 주인의 조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끓는 기름에 밀가루 반죽으로 된 덴뿌라를 넣는 순간 밀가루 속에 있던 수분이 순간적으로 빠져나오고, 튀김이 끝난 음식에는 작은 구멍이 무수하게 생기는 것을 관찰한 것이었다. 안도는 바로 연구실로 향해 어지럽게 흩어진 기구들을 대충 정리하고 서둘러 실험 준비를 마쳤다. 우선 밀가루를 반죽해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겨보니 국수 속의 수분이 증발되고 국수가 익으면서 속에 작은 구멍이 무수히 생겼다. 또 이것을 건조시켰다가 뜨거운 물을 붓는 순간 이번에는 작은 구멍에 물이 들어가면서 먹음직스런 국수가 되는 것이었다. 며칠을 보관해도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안도가 라면 발명에 성공한 것이다.
안도는 사업가로서의 명성을 되찾으며, 라면 발명가라는 명예도 거머쥐었다. 이렇게 개발된 라면은 다른 국수와는 달리 면이 꼬불꼬불하다. 그 이유는 많은 양을 한정된 부피의 작은 포장지 안에 처리하기 위한 공학적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즉, 직선보다 곡선 상태가 많은 양을 함축한다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그래야 공복감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지방 등 영양가를 높일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 보존 기간을 오래 지속하려면 튀김 공정에서 빠른 시간에 많은 기름을 흡수하여 튀겨지도록 수분 증발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도 직선보다 곡선형이 좋다. 또한 상품가치로 보더라도 직선보다는 꼬불꼬불한 곡선형이 시각과 미각에 어울리는 미학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탄생한 라면은 그 동안 수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별한 맛을 담아내고 조리 시간을 줄이는 많은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라면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공학적 구조에 변함없는 것을 보면 초기 수분을 어떻게 통제하느냐 하는 핵심적인 기술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만들어진 기술에 응용을 가하고 여러 가지 융·복합적 사고를 접목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근간이 되는 원천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일본과의 수출규제 갈등을 보면서 새삼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