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 전문성으로 승선 11년 만에 선장 자리에 올라
"여성 선장이 나와도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상선이 지난달 26일 전경옥 씨를 국적사 최초 여성 선장으로 임명한 후 전 선장이 밝힌 소감이다.
이번에 임명된 전 선장은 2005년 2월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현대상선에 ‘3등 항해사’로 입사하며 현재까지 15년간 근무하고 있다. 이후 2006년 2등 항해사, 2008년에는 1등 항해사로 승진했으며, 입사 후 승선 경력만 11년 만에 선장 자리에 올라섰다.
선장은 보통 승선 경력 평균 15년가량을 채워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모든 승무원을 지휘ㆍ통솔해 선내 질서를 유지하고, 선박의 안전 운항과 선적화물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로 리더십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특히 4~6개월을 바다 위에서 보내고 2~4개월의 휴가를 갖는 승선-휴가-승선-휴가의 반복 근무로 가족과 지인도 오랜 기간 볼 수 없는 외로운 직업 가운데 하나다.
전 선장은 입사 15년, 그리고 승선 11년 만에 선장 마크를 달았다. 벌크선 1년 근무 외에 줄곧 컨테이너선만 타며 컨테이너선 전문성을 쌓아온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재 전 선장은 중동 항로인 KME노선에 투입된 8600TEU급 컨테이너선 ‘현대 커리지호’에 승선 중이다.
전 선장은 “해양대에 여성이 입학한 지 거의 30년 된 시점에 첫 여성 선장이 됐다”며 “큰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바다가 여성에게는 여전히 좁은 문이지만 앞으로 성별에 따라 기회 자체를 박탈하거나 차별하는 관행이 깨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 선장의 말처럼 그동안 여성은 배 위에 오르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전 세계 선원 140만여 명 가운데 여성은 2%가 채 안 될 정도로 여성 승선은 보기 드물다. 그만큼 여성의 해양 진출은 금기시돼 있었다.
우리나라도 한동안 여성의 바닷길 진출을 법으로 막아왔다. 선원법이 제정된 이래로 여성과 만 15세 미만 남성을 선원으로 고용할 수 없었다.
남녀 차별이라는 구호 속에 1984년 선원법이 개정되면서 여자도 선원이 될 수 있게 됐고, 1991년 한국해양대가 여성 입학을 허용했다.
그리고 여성 입학 허용 30여 년 만에 국적사 최초의 여성 캡틴이 탄생했다. 전 선장은 “향후 대한민국에서 많은 여성 선장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전 선장처럼 캡틴을 꿈꾸는 여학생들이 꾸준히 관련 교육기관에 발을 들이고 있다.
한국해양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항해사, 기관사가 될 수 있는 항해계열 전공 입학 여학생 수는 91년 이후 꾸준히 오르면서 현재 11~12%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선장은 “10년 후에는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또 그들이 선장이 된다 해도 더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양성 평등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지난달 12일에는 고해연 기관장이 현대상선 첫 여성 기관장으로 임명됐다.
고 기관장은 2008년 2월 한국해양대 기관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현대상선에 3등 기관사로 입사했으며 입사 11년 9개월 만에 기관장으로 발탁됐다.
대한민국 해운업계 사상 최초로 국적선사 첫 여성 선장과 기관장을 임명한 현대상선에는 총 380명의 해상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전 선장, 고 기관장을 비롯한 총 8명의 여성 해기사가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