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가장 극단적으로 인간의 잔인성이 표출되는 사례는 전쟁이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2차세계대전으로 무려 7천만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인간을 살육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그리고 적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을 부추기는 상태에서도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심각한 양심적 고통과 심리적 후유증을 남긴다. 1차세계대전의 참상을 고발한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이런 묘사가 나온다.
“친구들은 차례차례 쓰러져 간다. 파울은 교회 부근의 전투에서 젊은 프랑스 병사를 죽인다. 서로 아무런 원한이나 증오도 없이 다만 전쟁의 광란 속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상대를 죽였다. 죽은 병사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의 가족사진을 보고 전쟁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나치 독일의 장교조차 유태인이라는 ‘인간’을 말살하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피할 수 없었다. 히틀러 친위대인 SS대원들조차 유태인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후 심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SS대원들의 알코올 중독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 내기 위한 도피처였다. 나치 지도부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안으로 개발한 것이 가스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잔인한 동족상잔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족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잔인함과 죄책감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전쟁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드론에 기반한 전쟁이다.
지난 3일 미국은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살해했다. 여기에 사용한 무기가 공격용 드론 ‘MQ-9 리퍼’다. 리퍼는 길이 11m, 날개 폭 20m, 무게 2200kg으로 재래식 전투기보다 훨씬 작다. 레이저로 유도하는 헬파이어 미사일 14발 등 약 1.7t의 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완전 무장 상태에서 14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7600m 상공에서 이동하기에 적이 식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리퍼는 미 본토에서 조종해 수천 키로 거리에 있는 ‘타겟’을 암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미군의 드론 활용 공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에도 IS(이슬람국가)의 지도자인 샤히둘라 샤히드가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날 미군 드론 공격으로 49명의 IS 전투요원도 함께 사망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드론은 이미 실전에 투입되어 이라크, 시리아, 아프간 등지에서 전쟁을 수행한 지 오래다. 다만 솔레이마니 같은 거물급 인사가 살해되어 새삼스럽게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을 뿐이다.
드론에 의한 전쟁은 ‘에이스컴벳’ 같은 비행슈팅 FPS(일인칭 슈팅) 게임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스크린에 보이는 타겟을 십자 마크의 중앙에 오도록 조준하고 버튼을 누르면 될 뿐이다. 드론에 의한 전쟁은 잔인함이나 죄책감 같은 인간의 ‘불편한 감정’을 제거해 준다. 슈팅 게임은 가상의 전투이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다.
드론 전쟁 만이 아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전투용 로봇이 전장에 투입된다면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이 될 것이다. 타겟이 이번의 솔레이마니처럼 살아 있는 인간이 될 수도 있지만 실제 전장에서와 같이 인간의 단말마적인 비명이나 고통은 보이지도 않고, 또 느낄 필요도 없다. 전쟁은 말 그대로 ‘게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쟁은 게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전통적인 군인이 아닌 게이머가 전쟁을 더 잘하는 시대가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의 전장이 게임속의 가상공간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에 게임과 같은 전쟁은 현실의 전쟁과 완전히 다른 가상공간 인식기술과 전투 스킬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 징병검사에서는 지원자의 신체역량보다 ‘게임 역량’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할 지 모른다. 아마 징병관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자네의 배틀그라운드 게임 성적을 말해 주게. 전투에 참가한 100인 중 최후의 우승자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