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해치지않아②] 손재곤 감독 "동물권, 피할 수 없다…못 담은 스토리 많아"

입력 2020-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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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보자마자 확신…마음대로 각색하라는 작가의 말 힘이 돼"

▲손재곤 감독.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해치지않아' 영화 내용이 나옵니다.

손재곤 감독이 2010년 '이층의 악당' 이후 10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훈(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해치지않아'가 그의 복귀작이다. 그의 세 번째 영화도 코미디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동물 없는 동물원'을 채워 넣은 건 CG팀의 '열일'(열심히 일한다)과 동물 슈트의 정교함,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동물권'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손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 차게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변호사 태수와 팔려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된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미션을 그린 이야기다.

오늘날 웹툰을 영화화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숱한 시도들이 있었고, 흥행한 작품이 상당수다. 하지만 여기엔 득과 실이 따른다. 설득력 문제 때문이다.

"영화 제작사에서 저한테 제안했어요. 웹툰 원작을 한 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걱정했어요. 단순히 주제만 들었을 땐 말이 될까 싶었죠. 그런데 막상 웹툰을 보니 설정들이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웹툰에서 만든 코미디 상황들이 너무 재밌었고, 따뜻한 정서가 좋았어요. 실사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고민해야 할 지점이었지만, 웹툰 설정 자체는 보자마자 받아들여졌어요."

손 작가는 작가의 믿음으로 힘을 얻었다. "훈 작가가 '마음대로 영화를 위해 각색하셔도 좋다'고 말해줬어요. 흔쾌히 그런 말을 해주신 게 고맙더라고요. 저도 대본을 쓰는 사람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거든요.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고치는 건 기분이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원작자가 먼저 그런 얘기를 해주니 정말 큰 힘이 됐죠."

손 감독은 영화를 본 훈 작가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고 전했다. "영화는 훈 작가가 만든 굉장히 특수한 영화적인 설정을 담고 있어요. 동물원 사람들이 동물 슈트를 입고 동물원을 운영한다는 설정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정말 신선한 소재인 거죠. 그만큼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에피소드, 상황이 정말 많아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소재를 다루면, 또 다른 상황을 만들고 또 다른 동물을 전개할 수 있을 거예요. 영화가 다른 플랫폼으로 만들어지거나 다른 문화권에서 리메이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영화화 된 걸 보고 느꼈다고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동물 슈트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피할 수 없었다. 웹툰 원작의 동물 슈트를 모두 옮기고 싶었지만, 조금은 내려놨다. 웹툰에서 북극곰, 나무늘보, 기린만 가져온 것은 사람의 인체와 유사한 동물을 선택해야 몸 전체를 구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족보행'이냐 '이족보행'이냐는 기준 안에서 동물들을 선택했다.

"곰은 주로 사족보행하지만 이족으로 일어서기도 해요. 하지만 신체 비율이 하체가 밑으로 늘어져서 고릴라 만큼 인체와 유사하진 앟죠. 그래서 까다로웠어요. 나무늘보는 사람의 체구와 유사하지만, 사이즈가 굉장히 작아요. 실제론 60cm 정도예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무늘보가 얼마나 큰지 잘 몰아요. 그걸 코미디 소재로 활용했어요. 하지만 유사한 패턴의 동물만 있는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던 동물을 개그코드로 활용하기 위해 육식동물을 등장시키기로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럴듯하고, 돌려보면 엉성한 사자가 탄생한 거죠."

웹툰을 기반으로 하지만, 배우들에게 '웹툰을 보라'고 주문하진 않았다. 모든 배우에게 원작을 전달하긴 했지만, 각자의 재량에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연기에 대한 디렉션도 촬영 중반부턴 멈춘다. 손 감독은 이 상황을 "배우가 감독보다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고 장악하게 되는, 역전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감독은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요. 연기 외에도 촬영과 관련된 모든 부분으로 관심사가 분산되기 때문이죠. 배우들은 자기가 맡은 캐릭터만 몇 달 동안 들여다봅니다. 어느 순간, 서로 위치가 바뀌게 되는 거죠. 제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들도 현장에 들어가면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요. 배우마다 연기 방법, 훈련 방법이, 접근 방법이 다르니까요. 정말 필요하다 싶을 땐 배우가 준비한 테이크, 제가 주문한 테이크 모두 담고, 결정은 편집실에서 내리는 거로 합니다."

다만, 손 감독이 특별히 강조한 게 있다면 '일부러 코미디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말 것'이었다고.

"작품 할 때마다 공통적인 주문이기도 해요. 배우는 캐릭터와 신마다 감정, 상황에 충실한 연기를 하면 돼요. 기본적으로 코미디 연기를 의도한, 의도한 게 탄로 나는 연기는 덜 하도록 통제를 하는 편이에요. 코미디는 대본 설정과 계산한 대사들, 편집 리듬에 의해 결정됩니다. 저도 초기엔 코미디를 보이게 연기하게 시키기도 했는데, 그런 장면은 늘 불만족스럽더라고요."

'해치지않아'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캐릭터 각자의 드라마를 더 담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웹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코미디만이 아닌 각자의 드라마를 가족 있어요. 저희도 그걸 담고 있지만, 웹툰만큼 캐릭터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서 좀 아쉬워요.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원작에 더 충실한 게 좋을 거 같아요. 한 회 자체를 비중이 적은 캐릭터에 할애할 수도 있는 게 드라마니까요."

▲손재곤 감독.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는 기승전'사랑'을 거부한다. 다만, 조연일 수도 있는 전여빈과 김성오의 러브스토리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손 감독은 영화가 수차례 각색되는 과정에서도 이 관계를 놓지 않았다. 손 감독은 "그 라인만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자면, 대립하던 강소라와 안재홍이 서로 이해하고 애정의 감정까지 가는 거겠죠. 하지만 주인공 남녀가 어떤 과정을 해결하는 데 굳이 러브라인을 넣지 않아도 요즘 관객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라인이 억지스럽고 자연스럽지 않으면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죠."

영화는 동물에 대한 시선이나 태도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태수가 얼떨결에 동물원 원장으로 부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메인 플롯'이라면, 북극곰 까만코와 동물원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동물권'은 이 영화의 '서브 플롯'이다. 인물을 담을 땐 오히려 철창을 걸고 찍었다면, 동물은 철창이란 프레임이 가두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 동물원 영화를 만들게 되면, 동물권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동물원에 대해 사람들은 마냥 동심을 불러일으키고 추억을 만드는, 동물과 교감하는 긍정적인 면만 떠올리지 않잖아요. 동물원 직원들이 슈트를 입고 보여주는 코미디가 메인 목적은 맞습니다. 대신 인간하고 살아야 하는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특정한 스토리 내에, 특정한 사례로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메인과 서브가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다만 성급하게 적극적이고 큰 목소리로 '동물원의 미래는 이렇게 해야 해요'라고 주장하진 않았어요. 지금 단계에서, 제가 공부한 것만으로 말하기엔 경솔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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