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의 전염병 ‘코로나19(COVID-19)’가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강대국과의 이해관계에 얽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말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중국의 “이례적인 노력”을 칭찬하고, 교역과 이동의 제한을 권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비상사태 선포의 주된 이유는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중국이 발병 감지, 바이러스 격리, 게놈(유전체) 서열을 파악해 WHO와 세계에 공유한 속도는 매우 인상적”이라며 “WHO는 중국의 전염병 통제 능력에 대해 지속해서 신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많은 나라와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으로 중국을 감싸고 도는 거브러여수스 총장의 태도에 반기를 들었다. WHO의 자문이기도 한 미국 조지타운대 로런스 고스팅 국제위생법 교수는 “거브러여수스와 WHO가 과학적으로 지시하는 것과 강대국 사이에서 매우 어려운 입장에 서 있는 것은 명백하다”며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을 둘러싸고는 “6000만 명이 사는 지역의 봉쇄를 포함한 중국의 대응을 칭찬함으로써 중국에 굴복했다” “이런 봉쇄 조치는 WHO 지침에 따른 것이 아니다” “WHO는 다른 국가와 중국 간 여행과 무역을 중단하지 않게 했다” 등의 비판이 일었다.
거브러여수스 총장은 12일자 인터뷰에서 WHO가 중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견해를 부정하며, “중국의 행동은 WHO의 기준에 위배되지 않고,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억제했다. 그들은 다른 국가의 위험을 줄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제는, WHO의 역할은 대규모 감염 유행 시 세계를 이끌고, 각국이 준수해야 하는 국제 규정을 주도해 최선의 과학적 지시에 따라 결정이나 권고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이 공중위생 문제를 일으킨 국가와 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를 전염병 공포로 물들이고 있는 코로나19는 중국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시장에서 야생동물을 취급해 치사율이 높은 질병 유행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WHO가 세계공중보건 위기를 조기에 선포하지 않은 건, 그 자체가 중국 경제와 중국 지도부의 이미지 손상을 우려하는 중국의 의중을 WHO가 과도하게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 교수이자, WHO에 관한 책을 쓰고, ‘세계의 변화와 건강에 관한 WHO협력센터’를 공동 설립한 켈리 리는 “누구나 패닉에 빠지게 해선 안되고, 사람의 왕래를 유지하고 국경을 계속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 정부를 지지할 것이라는 WHO의 메시지는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런 큰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1월 초 코로나19 감염자 증가에 관한 보고를 일부러 지연했다고 보고 있다. 지방정부 당국이 은폐를 꾀해 초기 단계에서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해 경고한 의사 고 리원량을 잡아다가 벌 준 것과 사람 간 감염 가능성 공표를 늦춘 것이 그 증거다. 전염병 전문가인 존 매킨지는 “WHO는 중국을 아군으로 둬야 한다”며 “중국은 WHO에 중요한 선수이고, WHO의 모든 행동은 그것을 의식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당국이 취하고 있는 ‘후베이성 봉쇄’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것이며, 효과도 미지수라는 게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영국 에딘버러대학의 국제의료문제 전문가이자 유엔과 개발도상국의 건강의료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데비 스리다르는 WSJ에 “중국에서의 이번 격리는 매우 극단적”이라며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들의 이번 방식은 실제로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 저하를 일으킬 것이며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중국 내 비판 여론을 억압하는 한편, 해외에서 중국의 역할을 확대해왔다. 중국은 현재 유엔의 일반 예산과 관련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자금 지원국이다. 다만 WSJ는 “WHO 입장에서 중국은 현재의 자금 지원 규모보다는 향후 대규모 의료문제 해결의 자금 조달처이자 파트너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위원회는 1월 22~23일 이틀간 긴급 회의를 열었는데, 결국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양측이 50대 50으로 갈렸는데, 한쪽은 감염 사례 증가와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을 주장한 데 반해, 다른 한쪽은 중국 이외 환자 수가 한정적이어서 중국이 대응책을 강구하도록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이 중국은 2000만 명이 살고 있는 감염 진원지 후베이성의 우한과 황강, 윈저우 등 3개 도시를 봉쇄하며, WHO 긴급위원회에 비상사태 선언을 권고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WSJ는 전했다. 국제의료전문가들은 “자국 내에서 감염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나라 정부는 비상사태 선언에 저항하지만, 중국이 미치는 힘은 이를 능가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WHO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 열흘 뒤 다시 회의를 열어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국제의료 전문가 데이비드는 “그건 완전히 잘못한 것이었다. 예상되는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긴급위원회가 열렸던 1월 23일,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581명이었으나, 약 3주 후인 2월 15일에는 100배가 넘는 6만8500명으로 늘었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정치가, 연구자로 공공보건기관에서 활동하다가 2017년 WHO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보건장관을,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WHO 사무총장으로서의 임기는 2017년 7월 1일부터 5년 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