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호황기에는 해외 명품이나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 매출이 상승한다. 반대로 불황일 때는 립스틱 등 저렴한 사치품 판매가 늘어나는 이른바 '립스틱효과'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립스틱효과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 전반적인 경제 침체에도 립스틱 등 작은 사치품의 판매량이 오르는 기현상을 일컫는 용어로, 작은 투자로 큰 변화를 이끌고 싶은 소비심리를 의미한다.
화장품 업계의 신제품 출시 동향에서 경제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립스틱 효과 때문이다. 화장품 업계는 시장 조사를 통해 다음 시즌 판매량이 늘어날 제품의 라인업을 강화하게 마련이다. 새 시즌을 앞두고 아이섀도나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의 신제품 출시가 늘면 경기 불황일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고기능성 화장품 라인업을 강화하면 호황을 예견할 수 있는 셈이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말부터 뷰티 기업들이 '작은 사치'를 주목하고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제품 상당수가 멀티팔레트, 립스틱 등 색조 제품 일색이다. 색조화장품은 많이 판매해도 단가가 높지 않은데다 불황기에 특히 판매량이 올라가 '불황템'으로 불린다. 특히 지난해 이후부터는 립스틱보다 블러셔와 아이섀도를 하나의 케이스에 담거나 다양한 컬러의 아이섀도를 담은 멀티팔레트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리따움, 에스쁘아, 레어카인드 등의 브랜드를 통해 지난해 말부터 아이브로우, 팔레트,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을 신제품으로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아리따움은 최근 ‘모노아이즈’의 대표 색상 중심으로 9가지 섀도를 새롭게 구성한 ‘모노아이즈 팔레트’ 4종을 출시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모노아이즈의 인기 컬러 4가지 ‘얼쓰’, ‘소셜라이트’, ‘드라이로즈’, ‘미드나잇펑크’ 중 하나에 8가지 색상을 더해 총 9가지로 구성됐다.
아모레퍼시픽의 또다른 브랜드들도 색조 제품에 힘을 주고 있다. 에스쁘아를 통해 ‘리얼 아이 팔레트’를 선보였으며 레어카인드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시드니’와 함께 ‘페이드 매트 립스틱’ 10종을 내놨다. 아리따움은 ‘매트포뮬라 아이브로우’를 선보였고 블랭크는 섀도우 10종을 새롭게 출시했다.
투쿨포스쿨은 최근 아이섀도와 블러셔를 컴팩트한 사이즈의 팔레트에 담아 휴대성과 활용도를 높인 ‘아트클래스 바이로댕 올 댓 팔레트’ 2종을 공개했다. 아트클래스 바이로댕 올 댓 팔레트는 매트와 글리터 타입의 아이섀도우 3종과 블러셔 1종으로 구성된 멀티 팔레트다.
립스틱 효과는 올들어 벌써 판매로도 증명되고 있다. 시에로코스메틱(siero cosmetic)이 올해 첫 신제품으로 선보인 ‘시에로 아이 팔레트 바’는 사전 예약 이벤트에서 완판되며 ‘불황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지난달 31일 정식 출시된 이 제품은 이보다 9일 앞선 지난달 22일부터 사전예약 판매를 진행했는데 조기 완판되며 사전예약 이벤트가 일시중단되기도 했다.
색조 제품의 강세 전망에 힘입어 색조 전문 브랜드에 대한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뷰티 인플루언서 비즈니스 그룹 레페리는 지난달 국내 최초 젠더 뉴트럴 색조 브랜드 ‘라카(LAKA)’를 운영하는 ㈜라카코스메틱스에 15억 원 규모를 투자했다. 라카는 론칭 2년 만에 국내 최대 H&B스토어 올리브영 700여개 매장 입점 및 일본 로프트(LOFT)와 플라자스타일(PLAZA STYLE)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3CE를 이을 2세대 'K-뷰티' 색조브랜드로 주목받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색조 화장품의 영역이 헤어메이크업까지 옮겨가는 등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색조 제품이 불황에 판매가 늘어나는 데다 밀레니얼세대의 합리적인 소비성향까지 더해지면서 색조 멀티 제품인 팔레트의 인기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