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오프라인뉴스룸 에디터
우선 새 정치의 희망을 줄 ‘한국판 마크롱’이나 ‘한국판 부티지지’가 안 보인다. 20대 국회를 좌지우지한 586세대(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50대)가 여전히 중심이다. 알 만한 586은 다 건재하다. 세대교체 여론과는 딴판이다. 민주당은 낙제점을 받은 현역 20%를 물갈이 한다더니 깜깜 무소식이다. 불출마 의원도 없다. 의원 몇 명이 컷오프 된 게 전부다. 미래통합당도 불출마 의원이 여당보다 많다는 것 빼고는 크게 다를 게 없다. 버티는 텃밭 TK의 물갈이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국회 직군의 다양성 부족을 상징하는 ‘법조당’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민주당과 통합당 간판으로 출사표를 던진 법조인은 각각 60여 명과 80여 명에 달한다. 전·현 정권에 각을 세웠다 물먹은 검사들도 들어 있다. 법조인이 49명으로 전체 의원의 16.6%였던 20대 국회에 못지않다.
비전은 아예 없다. 여권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신공항과 철도 건설 등 대규모 건설공약은 선거 단골 메뉴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론도 경제살리기로 포장된 선거 공약의 성격이 다분하다. 이 정도는 애교다. 표 논리에 정부 경제정책마저 휘둘리는 양상이다. 강남을 겨냥한 부동산 규제의 풍선효과로 수원 용인 성남의 집값이 급등했지만 정부는 망설였다. 여당에 유리한 이들 지역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여당의 반대 목소리를 의식해서였다. 결국 수원 3개구와 안양 의왕 등 5개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에 묶였다. 일부 지역에선 “성남이 빠진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경제 피해가 메르스보다 크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정부, 정치권의 행태는 너무 다르다. 청와대가 경제계의 건의를 전폭 수용한다고 해서 내용을 살펴봤더니 ‘저녁 회식은 주 52시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과 운임 경감 정도가 새로운 내용이었다. 이 정도의 립서비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위기 극복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기업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기업이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그렇다면 기업이 투자하고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기업의 기를 살리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되레 5%룰(기관투자가의 대량보유 공시의무) 완화 등으로 기업을 옥죄는 게 현실이다. 벌써부터 총선 후 경제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새 인물과 비전이 없다 보니 감동도 없다. 쇼잉에만 올인하는 정치권이다. 민주당은 스토리 있는 인물 영입에 집착하다 성폭력 데이트 논란을 빚은 ‘원종건 파동’을 불렀다. 한국당은 보수세력을 끌어모아 미래통합당을 출범시켰다. 실상은 박근혜 탄핵 전으로 돌아간 ‘도로 새누리당’이다. 호남 3당이 24일 출범시킨 ‘민생당’도 선거용 급조정당이다.
구태는 4년 전과 닮은꼴이다. 민주당은 높은 지지율에 취해 오만한 모습을 보이다 탈이 났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고발했다 들끓는 비판 여론에 고개를 숙였다. 검찰개혁 명분을 앞세운 추미애 법무장관의 독주는 검찰과의 심각한 갈등을 불렀다. 최근엔 ‘미래한국당’ 같은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 얘기까지 나온다. 보수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공짜로 넘겨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존재 이유를 정면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통합당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정권 도우미로 전락했다는 여론이 비등해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내주고도 당내 친박세력은 건재하다. 합리적 보수가 등을 돌려 지지율이 여당에 크게 밀려도 위기감이 별로 없다.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다 반대당 이미지가 굳어졌다. 정권심판론이 유일한 비전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수권정당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35% 보수가 밀어주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국민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3無선거에 국민은 답답하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30~40% 중도 유권자는 할 말을 잃었다. 여도 야도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코미디 같은 선거지만 그래도 기권은 곤란하다. 투표장엔 반드시 가야 한다. 그들의 선택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 차악의 선택이 최악의 결과보다는 낫다.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