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도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회사와 협력ㆍ품질 개선 강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달라졌다. 습관적인 파업과 강경 투쟁에 집중해 비판받던 과거 모습과 달리 회사와 협력할 사안에는 힘을 보태고, 협력업체와 지역사회까지도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 지도부 출범 초기까지만 해도 노조의 변화한 모습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국면에서도 회사와 힘을 합치는 결정이 이어지자 업계에서는 현대차에 바람직한 노사관계가 자리 잡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전날 사측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합의를 맺었다. 합의에는 사업장 내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 이외에도 협력업체를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위기극복을 돕는 방안도 담겼다.
특히 노조는 완성차의 품질을 높여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하는 것이 협력사의 고용안정에 직결된다며 사측과 공동으로 '품질향상 대응팀'을 구성해 품질 문제에 관심 갖기로 했다.
지난 12일에는 "품질력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만회해 고객에게 믿음을 주자"며 조합원을 독려하는 모습도 나왔다. 당시 현대차는 협력업체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공급하는 부품 '와이어링 하니스' 수급에 차질이 생기며 완성차 생산을 멈춘 상태였다.
노조는 "고객이 없으면 노조도, 회사도 존재할 수 없다"며 "이럴 때일수록 노사는 고객에게 신뢰와 믿음을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협력사는 함께 가야 할 동반자"라며 사측이 부품사에 1조 원 규모의 긴급자금을 투입한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가 조합원에게 품질과 생산성, 고객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는 모습은 과거와 대조된다. 현대차 노조는 2012년부터 7년 연속 파업에 나서며 사측과 갈등을 빚었다. 현대차와 금융투자업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2012~2017년) 동안 현대차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연평균 8만3256대, 생산손실은 1조779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될 정도다.
노조의 태도 변화는 전임 지도부 임기가 끝나가던 지난해 여름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9월 '2019년 임금 및 단체교섭' 협상을 진행한 노사는 8년 만에 파업 없이 교섭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 무역 전쟁, 한국 자동차 산업의 침체 등을 고려해 추석 이전에 회사와 잠정합의안을 도출해냈다.
하부영 당시 노조 위원장은 한 토론회에서 "현대차 노조가 30년 이상 투쟁해 평균연봉 9000만 원을 쟁취했지만, 결국 앞만 보고 달렸다"며 "우리가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건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차기 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는 "임금 인상 투쟁 방향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치러진 지도부 선거에서는 '실리 중도 성향'의 이상수 후보가 조합원 49%의 선택을 받아 당선됐다. 실리 성향 후보가 당선된 건 2013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상수 지부장은 당선 이후 간담회에서 "'묻지 마'식 투쟁에 조합원들도 식상해 한다"며 "회사가 발전해야 고용도 안정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또,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현대차가 오래갈 수 없다"며 "노조의 사회적 역할을 공약했고 실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의 미래사업구조 개편을 담은 '2025 전략'에 대해서도 고용이 보장된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5 전략은 현대차가 완성차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드론, 로봇, 플라잉카 등 모빌리티 사업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이 지부장은 "회사가 고용 보장을 한다면 노조도 인력 재배치와 기술 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5만 명이 넘는 조합원을 보유한 현대차 노조가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하면 완성차 업계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노조도 인식하면서 회사와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대립을 넘어 협력적 노사관계가 정착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