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오해와 이해

입력 2020-03-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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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가 점차 늘어나면서, 최근 몇 년간 주총 시즌만 되면 언론에 유행처럼 등장하는 주제가 생겼다. 바로 의결권 자문사들의 역할과 상장사들의 부담에 대한 내용이다. 보통 4가지로 압축된다.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가장 중요 사안인 주주총회의 안건들을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소수 인력들’이 턱없이 ‘부족한 기간’에 판단한, 그것도 ‘아주 싼 가격에’ 제공하는 의결권 자문사의 보고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자문사들은 주총의 숨은 권력이 되었지만 ‘아무런 관리·감독도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기에는 한국만의 법제도적 상황과 시장 형성의 맥락, 기업과 언론의 이해관계, 그리고 여러 가지 오해들이 함께 뒤섞였지만, 아직 제대로 된 업계 차원의 입장과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주총 시즌이 매우 촉박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상법상 주총 공고는 2주일 전까지이므로 기업의 공시는 여전히 주총에 임박해서 나오지만, 언젠가부터 한국 주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슈퍼 주총 데이’는 여전해서 특정 2~3일에 대부분 상장사들의 주총이 몰려 있다. 게다가 올해는 국민연금이 일정한 조건하에 기관투자자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하므로 의결권 자문사 입장에서는 분석 대상 기업과 안건이 증가해 부담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주총 안건을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분석하는 것이 상장사뿐만 아니라 주주들과 의결권 자문사까지 상생하는 길이기에 가까운 시일 내 이와 같은 문제가 꼭 시정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계약은 일반적으로 기관별 계약방식으로 이뤄지며 기업 수나 주총 건별로 연간 금액을 책정한다. 보고서나 수요에 따라, 또는 같은 기관이라도 펀드별로도 구분하여 계약하는 해외에 비하면 단순한 방식이며, 가격 또한 아직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리서치 보고서가 무료라는 뿌리 깊은 인식이 있는 데다가 국내 가격을 책정할 때 해외 의결권 자문사 중 1위인 ISS의 사례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ISS는 보고서 한 건을 분석해서 전 세계의 수많은 기관투자자들에게 발송하므로 보고서당 단가가 낮아도 수량이 많아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만, 한국 시장은 그렇지 않다. 영미권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인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크지도 않다. 한국과 비슷한 법제를 가진 일본에 불과 5년 만에 시총 700억 원대에서 최근 시총 1조 원을 돌파한 ‘IR재팬’이 있듯이, 정부의 강력한 주도하에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상황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의결권 자문업은 본질상 전문성과 공정성에 기반한 시장의 평판이 핵심이다. 평판은 신뢰에서 온다. 당 연구소의 직원은 2020년 3월 현재 30명(인턴 포함) 수준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박사와 현장 출신을 거의 1:1 비율로 충원해 유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업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손익을 이유로 전문성과 품질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 점은 같은 업계의 다른 연구소들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영위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감수해야 한다. 긴 안목을 가지고, 보다 선진적인 자본시장을 만들어 간다는 사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속적인 서비스 고도화와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며 업의 영역을 넓히고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길밖에 없다.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관리·감독 주장은 직접적으로 2014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감독 강화를 위해 ‘중대한 이익(Material Interests)에 대한 공시 지침’을 발표한 것에 기인한다. 미국의 ISS는 1980년대 중반 의결권 서비스를 시작한 후 30여 년이 지난 2014년 매각 시 약 3억6400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성장하며 시장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주주활동이 매우 활성화된 미국에서조차 의결권 자문사의 ‘등록 의무화’가 하원에서는 통과됐지만, 상원에서는 부결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도 그 중요성과 함께 커져가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등록제나 신고제를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다만, 신용평가사의 경우처럼 ‘규제 비즈니스화’한다면, 역량이 검증되진 않은 업체가 우후죽순 난립하는 현상은 방지할 수 있지만, 진입 장벽이 높아지거나 라이선스로 ‘과점 사업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의결권 자문 시장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므로 명시적 법제화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기업지배구조 생태계를 형성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먼저다.

의결권 자문업의 본질은 전문성과 평판이다. 결국 신뢰라는 말이다. 시장의 평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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