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에 위치한 애경산업 본사에서 만난 그는 첫 인상부터 여성임원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코로나19를 의식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그는 전형적인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이었다.
그가 애경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난해 5월. 이직한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 미국 MIT대학 MBA를 마치고 피델리티와 아모레퍼시픽에서 근무하던 그는 애경산업에 대한 호기심이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고 운을 뗐다.
“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장수기업이지만 홍대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전통과 혁신이라는 모순이 공존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했죠. 이 기업에서 좀더 배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 순간 이미 회사의 일원이 돼 있더군요.”
그는 사옥 이전과 새로운 채널 확대 등 애경산업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도약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생활용품 전문기업에서 시작해 화장품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홈쇼핑이라는 생소한 유통채널에 론칭한 것부터 애경의 변화는 성공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에이지투웨니스’ 중국 1위 넘어 세계로=박 부문장이 애경산업에 입사하며 꼽은 두가지 전략적 키워드는 ‘글로벌’과 ‘디지털’이다.
이미 애경산업은 에센트 팩트 ‘에이지투웨니스(Age20`s)’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도 확인했다. 수년째 홈쇼핑 히트상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에이지투웨니스’는 중국 티몰에서 동일 카테고리 판매 1위에 오르며 안방을 넘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브랜드로 한단계 도약했다.
하지만 박 부문장에게 에이지투웨니스의 성공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에이지투웨니스에서 시작된 중국에서의 성공 DNA를 아세안을 넘어 글로벌 전역으로 넓히는 동시에, 화장품으로 시작된 중국에서의 인기를 생활용품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가 세운 전략은 그가 거쳐온 경험이 자산이 됐다.
홍콩에서 글로벌 투자기업 피델리티에 근무할 당시 박 부문장은 소비재 기업들에 투자하면서 그들의 전략을 엿보고 투자처를 택했다. 투자는 미래가치를 내다봐야 성공할 수 있는 만큼 그는 그들의 성공 배경에 주목했다.
“글로벌 투자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소비재 기업에 투자한 경험으로 애경이 지닌 글로벌 경쟁우위를 파악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구체화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국 비비크림 카테고리 내 1위 브랜드인 에이지투웨니스의 성공 스토리를 아세안 및 미국 등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먼저 찾기 시작한 ‘2080’(치약)과 ‘케라시스’(헤어제품) 등의 퍼스널케어 제품도 중국을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박 부문장은 생활용품 가운데 치약, 샴푸 등 퍼스널케어 분야에서도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애경 2080을 최우선 순위 브랜드로 꼽는다. 엄마의 경험이 중요한 퍼스널케어 부문에서 그 역시 엄마로서 한국 치약의 우수성에 엄지를 치켜든다.
“한국 치약은 의약외품으로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품질 면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입 속에 넣는 치약에 대한 소비자 관여도가 갈수록 증가할테니 2080이 글로벌 브랜드화될 날도 머지 않았다고 기대합니다.”
◇‘K-뷰티’ 넘어 ‘K-라이프’까지=박 부문장은 K-뷰티에 이어 K-라이프 역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은 그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다. 위생용품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이 퍼스널케어를 넘어 홈케어(세제, 섬유유연제, 청소용품 등)까지 번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
“코로나 19로 개인 위생에 대한 전세계 소비자들의 관심이 훨씬 더 커졌습니다. 한국의 마스크, 손세정제 등 위생용품에도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죠.”
애경산업은 지난해 말 위생용품 ‘랩신’을 새롭게 론칭했다. 랩신은 손세정제, 손소독제티슈, 핸드워시, 마스크 등의 라인업을 갖춘 브랜드로 위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을 예측하고 선보인 브랜드로 올들어 코로나19 사태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그는 위기 속에서 기업의 저력이 증명된다고 믿는다. 애경산업의 다각화된 포트폴리오와 인재육성, 유연한 조직문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애경산업은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최근 인천 송도에 종합기술원 설립을 결정했다.
그는 스스로 기업의 도선사라 생각한다. 선박을 안전하게 이끄는 도선사처럼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그에게는 방향 설정 후 실행할 이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애경산업 팀원들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팀원이 밀레니얼 세대이다 보니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봅니다. 제가 임원이라고, 또 여성이라고 해서 배려나 차별도 없죠.” 그에게 배려는 또 다른 의미의 차별일 뿐이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이 위축돼 있지만 박 부문장에게 지금은 움츠릴 시기가 아니다. “위기일수록 다음을 대비하는 전략을 탄탄하게 수립해야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우연이 아닌 철저한 대비가 먼저입니다.” 다행히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확산된 중국 시장이 벌써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의 글로벌·디지털 전략이 현실화할 날이 머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