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현장] “정치 어려워”ㆍ“BTS 도움되는 후보자에 투표”… 길 잃은 ‘14만 교복 유권자’

입력 2020-04-02 17:34수정 2020-04-0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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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유권자 대부분 선거 내용 잘 몰라…"주권 행사하겠다"는 유권자도

▲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미뤄진 서울 소재 한 학교의 출입이 금지돼있다. (유혜림 기자 )

"투표는 할 거예요. 우리 BTS(방탄소년단) 오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찍으려고요." (박서현, 18세)

"정치 어려워요. 저는 이과인데 중간고사에 모의고사도 있어서 따로 선거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이소윤, 18세)

2019년 12월 27일,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을 포함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의 전국 14만 명의 고등학교 3학년은 4·15 총선에서 '생애 첫 투표'를 실시한다. 각 지역의 투표소를 직접 찾아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자격을 처음으로 갖게 된 것이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어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투데이가 2일 만난 고3 유권자 대부분은 선거의 중요성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아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학이 차일피일 연기되다 보니 선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목동 학원가에서 마주한 고3 서영인 양은 "제 주변엔 딱히 정치에 관심 있는 애들을 보지 못했어요. 수능 준비하느라..."며 "고3부터 투표한단 얘기는 들었는데 학교에서 자세히 듣기보단 페이스북 같은 데서 봤어요"라고 말했다.

서 양 친구인 박서현 양은 "공약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한데..." 라며 물음표를 머리 위로 그렸다. '공약은 국회의원이 어떤 정책에 대해 실행할 것을 약속하는 거예요'라고 하자 박 양은 "아! 그러면 K-POP(케이팝) 관련한 공약에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가 잘됐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박 양 옆의 이소윤 양은 "TV 뉴스에서 선거가 국회의원 뽑는 것까진 아는 데 그 이상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다"며 "1학년 때 배우긴 했는데 개념도 어렵고 비례정당 어쩌고 하는 것도 어렵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교육계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만 18세 이상 학생들을 위해 '찾아가는 선거 교육'을 펼칠 예정이었다. 학교가 선관위에 교육을 신청하면, 선관위 산하 선거연수원에서 전문 교육 인력을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개학이 늦어지면서 선거 교육을 신청할 학교는 거의 없어 보인다.

고3 담임교사인 양모 씨(여, 29세)는 "최근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생 및 교사 대상 선거교육 있었는데 코로나로 취소돼 영상으로 선거교육을 하고 학생 연합회 주관 정책 제안 토론회도 실시했다"며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으니 학교 차원에서 따로 실시한 건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참정권 교육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의견도 나온다. 고등학교 20년 차로 재직 중인 한 교사는 "청소년 선거권 부여는 개인적으로 환영하지만, 코로나19로 준비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선거를 치르게 된 점은 아쉽다"면서 "선관위 현장 교육을 받지 못한 데다 우리 측도 가정통신문이나 안내 차원에서 자율적 학습을 권고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질 측면에서 선거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3 유권자들이 선거에 아주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첫 투표에 대한 기대감과 공약을 꼼꼼하게 따져보며 주권 행사를 톡톡히 해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성남시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 군(19세)은 "이번에 투표장엔 꼭 가겠다"면서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부모님이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셔서 신중하게 살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경제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 시장경제 추구 인물을 따져보려 한다"며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조 모양(19세)은 "역사상 첫 청소년 투표세대라고 하니 설렌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랏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게 뜻깊다"며 "물론 어르신들이 우리 투표 참여를 걱정하는 시선도 알고 있지만 어른들은 투표 경력이 많아 학습된 거다. 우리도 인터넷으로 직접 후보자와 공약을 볼 수 있고, 부모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참고하기도 한다"고 당차게 설명했다.

경기 소재 고3 학생인 김 모양은 "개인적으로 교육 정책에 관심 있는 후보자를 뽑고 싶다"면서 "시험이나 경쟁 위주의 교육환경을 개선해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며 교육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선거 연령 하향에 대한 시각이 다양하다. 고등학교 교사인 박모 씨(남, 46세)는 "나이 잣대로 청소년 선거를 우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른 중에서도 가짜뉴스로 제대로 된 사회인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 않으냐"면서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국민으로서 똑같은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 부당한 것"이라며 생각을 전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고3 학생들이 학교 수업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어 선거에 신경 쓰긴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신 교수는 "이번 선거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됐는데 어른들도 헷갈리는 상황"이라며 "교복 입은 유권자들에게 무슨 (투표 관련) 책임을 얘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선 선거 관련 주권자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 나온다. 홍문표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으로 대체한 선거교육은 학생들이 처음 주권자로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교육으로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선거 관련 주권자 교육은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갖고 현장에서 직접 이뤄져야 한다. 또 학교가 정치화되지 않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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