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勞使政)의 상생 모델로 어렵게 출범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광주광역시, 현대자동차와 함께 사업의 한 축인 한국노총이 광주형 일자리 협약 파기를 선언했다. “노동자측을 배제한 정치놀음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이유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노동계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사업이 계속 삐걱거릴 것이라는 회의론이 커진다.
광주형 일자리는 기존 완성차 업계의 절반 수준 연봉으로 위탁생산 민관 합작공장을 세워 지역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이다. 임금을 낮추는 대신 현대차는 일감을 우선 배정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교육·의료 등의 복지를 지원한다. 작년 1월 광주시, 현대차, 한국노총 3자가 협약을 체결한 뒤 사업을 진행해왔다. 현대차는 고비용·저생산 구조를 개선하고, 광주시는 절박한 고용위기 해소와 함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정부도 상생 일자리의 본보기로 삼겠다며 적극 지원해왔다.
이에 따라 광주시·현대차가 각각 1·2대 주주로 우선 920억 원을 출자한 (주)광주글로벌모터스가 설립됐다. 작년 12월 광주 빛그린산단 부지에 공장도 착공해 현재 8%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내년 4월까지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연간 10만 대 생산하는 공장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협약을 무산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그동안에도 현대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연봉 인상과, 이미 합의된 임단협 5년 유예 대신 매년 임금협상 등을 주장해왔다. 특히 노조는 그들의 대표를 경영에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처음부터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던 사안이다. 사업이 구체화되면서 노동계의 무리한 요구로 계속 꼬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현대차에 어떤 실익이 없고 사업성도 불투명해진다. 이미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공급과잉 상태다. 코로나19 사태 아니라도 글로벌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현대차의 수익성 또한 나빠지고 있다. 국내 경차 판매 또한 계속 줄어들고 있다. 모든 여건이 악화하고 지속성도 의문인 사업이다. 현대차로서는 노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이 사업에 힘을 쏟을 이유가 전혀 없다.
광주형 일자리는 근본적으로 지역의 고용확대를 위한 프로젝트였다.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상생과 협력으로 바꾸고, 자동차산업의 고비용·저효율 구조 개선과 일자리 창출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공장이 적정 임금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사업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고용을 유지할 수 없다. 노조가 끝내 제 몫을 더 챙기겠다며 이 사업의 근본 취지마저 무시한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벌써 실패로 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공들이는 다른 지역의 이런 저런 상생형 일자리 사업도 기대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