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오프라인뉴스룸 에디터
슈퍼 여당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선 흔치 않다. 경계 대상이다. 대의정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이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여권이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장악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다. 압도적 의석을 앞세운 힘의 정치 유혹에 빠지는 순간 ‘합법적 독재’로 흐를 개연성이 다분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견제받지 않는 여권의 독주체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일본이 예외적이지만 우리가 따라갈 모델은 아니다.
이런 거대 여당을 국민이 선택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긍정평가가 경기침체와 꼬인 남북관계 등 모든 악재를 덮었다. 막말구태를 일삼은 야당을 심판했다. 현 정권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대안세력이기를 포기한 야당에 표를 줄 수 없었다는 게 중도 유권자의 생각이었다는 분석에도 동의한다. 세대교체와 맞물린 주류교체론도 일리가 있다. 다 맞는 얘기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바로 여당에 대한 책임정치 주문이다. 힘을 보태줄 테니 야당과 허구한 날 싸움만 하지 말고 개혁입법 등 각종 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해 그 결과로 평가를 받으라는 것이다. 신물 나는 정쟁과 그 산물인 식물국회를 새 실험을 통해 청산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미국식 양당체제가 지배했다. 양당제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작동하면 좋은 제도다.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에선 고장난 지 오래다. 그러니 여야 양당의 끝없는 강대강 대결이 이어졌다. 민생과 경제는 뒷전이었다. 진보, 보수로 갈린 진영논리가 정치를 지배했다. 국론은 좌우로 분열됐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정치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구조다.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6개월이 걸리고 어떤 법안은 몇 년째 표류하고 있다.
이런 양당제의 폐해를 익히 아는 국민은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차례 다당제를 택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다당제는 모두 세 번 있었다. 4당체제였던 13대 국회(1988년)와 3당구도였던 15대 국회(1996년), 20대 국회다. 모두 실패로 끝났다. 13대 4당구도는 1990년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인위적 3당 합당(민주자유당)으로 양당구도로 회귀했고, 15대의 3당체제는 1997년 DJP연합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19대까지 양당구도가 이어졌다. 20대 3당체제는 양당제의 대결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 3당에 캐스팅보트를 줌으로써 양당의 소모적 정쟁에서 벗어나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국민은 변화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역대 최저를 기록한 법안 처리율과 동물국회가 초래한 윤리위 제소 남발 등 최악의 성적표가 이를 대변한다. 제3당인 국민의당이 내홍으로 쪼개졌고 조율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민주당과 통합당은 쉬지 않고 싸웠다.
민주당은 “통합당의 발목잡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통합당은 대안 제시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끝없는 대립이 이어졌다. 말도 안 되는 위성 비례정당의 탄생을 낳은 선거법은 그 산물이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1호인 공수처법 처리가 통합당의 반대에 막히자 소수정당의 협조를 위해 급조한 게 바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국민은 결국 거대 여당의 탄생을 통한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택했다. 민주당은 힘이 세진 만큼 책임과 부담도 커졌다. 잘하면 장기집권의 토대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지만 잘못하면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은 더 이상 야당 탓을 할 수 없게 됐다. 무너진 경제를 일으키는 일과 고용난 해결 등 민생 회복, 분열된 국론을 모으는 일은 온전히 여당 몫이다. 위기에 처한 기업의 도산을 막고 활력을 불어넣어 투자할 여건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수 야당과의 대화정치 복원도 숙제다. 민심은 조변석개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만해지는 순간 가차없이 등을 돌린다. 거대 여당 민주당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