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를 선점하라”…함대 띄우는 원유 선물 트레이더들

입력 2020-04-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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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원유저장업체 로열보팍 “저장공간 거의 다 팔려”…“바다 위에 떠도는 석유 2억5000만 배럴 달해”

▲미국 디트로이트의 마라톤페트롤리엄 정유소에 석유저장 탱크들이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요 급감에 전 세계적가 이례적인 석유 저장공간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디트로이트/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급감과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유가전쟁에 의한 공급 증가로 인해 전 세계에서 원유를 저장할 공간이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이에 원유시장 트레이더들이 스토리지를 선점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남는 원유 저장소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앞다퉈 몰려드는 것. 급기야 세계 메이저 원유저장업체들이 백기를 들었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독립 석유탱크 터미널 운영사인 네덜란드 로열보팍(Royal Vopak)은 이날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로 인해 공급과잉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원유와 정제유를 비축할 저장 공간이 거의 다 팔린 상태라고 밝혔다.

게라드 파울리데스 로열보팍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터미널의 석유 저장 가용용량은 매진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현재 전 세계에서 정비 중인 터미널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팔렸다. 내가 듣기로는 이런 현상은 우리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팍은 밀려드는 고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정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보팍은 싱가포르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에 허브를 보유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현물가격이 선물가격보다 낮거나 결제월이 멀수록 선물가격이 높아지는 ‘콘탱고(Contango)’ 상황에서 혜택을 받았다. 트레이더들이 향후 유가 회복을 기대하면서 그만큼 석유 저장공간에 대한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교통시스템이 대규모로 중단하고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나서 글로벌 원유 수요는 사상 초유의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지난달 유가전쟁 이후 이달 5~6월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하기는 했지만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다.

오딘-RVB탱크스토리지솔루션의 크리엔 반 비크 스토리지 브로커는 “지금 시장에서 저장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며 “자체적으로 원유저장 탱크가 있는 기업들은 아직 여유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3자 석유저장업체로부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5월물 미국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이 전날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진 것도 저장공간 불안에서 비롯됐다.

트레이더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멕시코까지 세계 곳곳에서 원유와 정제유 저장공간을 찾고자 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항만에 있는 탱크 터미널이 꽉 차자 아예 유조선에 원유를 가득 실어 바다 위를 헤매게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트레이더들이 석유를 저장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찾아 자신의 유조선 함대를 바다에서 계속 떠돌게 하자 시장에서 전례 없는 물류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조선 해운 컨설팅 업체인 클락슨스플라토의 프로드 모르케달 애널리스트는 이날 보고서에서 “현재 바다 위에서 유조선 등에 저장된 석유 규모가 2억5000만 배럴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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