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 국제경제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코로나 발원지 중국이 애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처만 잘했어도 비극의 역사는 다르게 쓰였을지 모른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의료물자를 팔아 곳간을 채우며 생색내는 꼴을 봐주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형용하기 힘든 비극 앞에서 정작 미국은 뭘 했는가. 로렌스 프리드먼 킹스칼리지 런던의 전쟁연구학 교수는 “미국은 세계 최고 자원·과학·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면서 “트럼프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 그게 슬픈 일”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수많은 위기 국면에서 돋보인 건 미국의 리더십이었다. 조지 W. 부시는 2005년 말라리아 퇴치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아프리카에서 200만 명의 어린 생명을 구했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버락 오바마는 군대와 의료진을 급파해 국제사회 공조의 모범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 생명을 앗아간 것을 넘어 ‘미국 예외주의’를 기초부터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아왔다는 이데올로기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티머시 가튼 애시 옥스퍼드대학 역사학 교수는 “제국의 흥망성쇠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친숙한 이야기”라며 “미국이 이걸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역사의 물줄기는 이미 방향을 틀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