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 이벤트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했다. 리커창 총리는 소신 표명에 해당하는 정부 활동 보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이 큰 전략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도 종식 선언은 하지 않았다. 아울러 코로나19 탓에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제시도 보류하고, 경기 부양 대책으로서 재정 투입을 확대할 방침을 강조했다. 전인대는 매년 3월 5일 개막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우선시해 이례적으로 2개월 반 연기 끝에 이날 개막했다.
리 총리는 세계의 관심을 모아온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신중국 건국 이래 처음이다. 코로나19의 팬데믹과 세계 경제·무역 환경에 대한 강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대신에 리 총리는 “올해는 고용 안정과 민생 보호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올해 실업률 목표치는 6% 안팎으로 잡았다. 작년은 5.5%였다. 코로나19로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어서 고용대책을 세워도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도시부의 신규 고용은 900만 명 이상으로 작년 목표치 1100만 명에서 낮춰 잡았다. 리 총리는 재정지출을 확대해 고용대책 등을 추진할 방침을 나타났다.
작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2.8%였던 재정적자는 3.6% 이상으로 제시했다. GDP 대비 재정적자가 3%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정부의 인프라채권 발행액도 3조7500억 위안으로, 2019년 2조1500위안에서 대폭 늘렸다. 재정적자에 산입되지 않는 ‘특별국채’도 1조 엔 규모로 발행할 예정인데, 실현되는 이는 2007년 이후 13년 만의 발행이다.
금융 정책은 지급준비율과 금리 인하를 종합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이는 작년 정부 활동 보고에는 없던 문구로,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고용과 소득 환경 개선에 쓰는 한편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후베이성의 경제 회복에 쓸 계획이다. 리 총리는 증치세(부가가치세) 감세 등 5000억 위안 규모의 감세·수수료 삭감을 할 수도 있다고 분명히 했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 대해서는 “중·미 제 1단계 무역 합의를 공동으로 철저히 하겠다”고만 말하고, 미국이 문제시 하는 하이테크 산업 육성책 ‘중국제조 2025’는 2019년에 이어 언급하지 않았다.
전인대에서 논의될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해 리 총리는 “홍콩이 국가 발전에 더 집중하도록 지원하고,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겠다”며 간섭 의지를 나타냈다. 홍콩에서는 작년 여름 범죄인 송환법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가 민주화 운동으로 번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리 총리는 “홍콩이 국가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 제도·집행 메커니즘을 확립하고, 헌법에서 정한 책임을 홍콩 정부에 이행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은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무시하는 이런 국가보안법 제정 절차를 밟으려는 움직임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홍콩의 자치권을 흔드는 중국 관리들과 기관을 제재하고, 해당 단체와 거래하는 은행을 처벌하는 초당적인 법안을 긴급하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중국의 법률 제정 시도가 그대로 실현되면 우리는 매우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긴장 관계가 계속되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대만 독립을 꾀하는 분열적인 행동에 단호히 반대하고 막을 필요가 있다”며 ‘하나의 중국’을 계속 밀고 나갈 뜻을 밝혔다.
중국 국무원이 이날 발표한 2020년 예산안에서 국방비(중앙 정부 분)는 전년 대비 6.6% 증가한 1조2680억 위안을 기록했다. 증가율은 2019년(7.5%)보다 줄었지만, 코로나19로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가운데 과거 최고액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