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로 인적·물적 교류가 차단되며 소위 ‘7할 경제’(경제능력의 70%밖에 가동되지 않는 상황) 시대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미·중 간의 전방위 마찰이 격화되면서 그야말로 불확실성 시대를 연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전시 상황이라고 토로한 것은 경제위기에 대한 긴박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한국경제사에서 전시체제에 버금가는 긴박감을 갖고 국가 총동원 체제를 발동한 것은 1962년 시작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과 관료들의 사명감이 여러 액션플랜을 실천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1962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해는 초강대국 미·소의 군비경쟁이 정점에 달하면서 이른바 쿠바위기가 터졌던 해다. 한·일 간에는 정상화를 위한 각서가 체결됐다. 이러한 격변기에 정부는 경제개발에 불을 붙이며 본격적인 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3개의 프로젝트다. 박 대통령은 선진국의 기술정보 획득, 한국 산업을 이끌어나갈 에너지(석유) 콤비나트 조성, 수출 중심 국가로의 비전 등을 제시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는 1962년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울산정유단지를 조성했다.
올해 창립 58주년을 맞는 KISTI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데이터 생태계 중심기관’이 되겠다고 선포했다. 과학기술 지식정보 인프라의 연구개발·서비스 체계를 확립해 국가 과학기술 진흥과 산업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끄는 주요 기술 트렌드를 분석·전망해 국가연구개발정책, 산학연 협력 등에 활용토록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KOTRA는 1962년 6월 출범한 정부 출자 기관이다. 수출·무역진흥, 국내외 기업 간의 투자 및 산업기술 협력의 지원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산업의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는 시기에 장기간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해온 KOTRA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막강했던 해운망, 종합상사망이 깨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코트라망이기 때문이다.
1962년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한 뒤 미국 걸프(Gulf)사와 합작해 1963년 12월 울산공업단지 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정부는 1960년대 후반 고도 성장과 에너지 정책의 변화로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울산 정유공장의 시설을 확장하는 동시에 제2 정유공장인 호남정유를 설립하도록 했다. 대한석유공사의 후신인 유공(현 SK에너지) 이외에도 1980년부터 쌍용정유(현 에스오일)도 가동에 들어갔다. SK에너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정유사로서 하루 84만 배럴의 원유 정제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수출액은 2019년 기준으로 410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7.6%를 차지했다. 반도체(약 950억 달러), 자동차(약 430억 달러)에 이어 수출 품목 3위다. 최근 저유가 상황에서 정유·석유화학 산업은 큰 변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1962년 동시에 출범한 KISTI, KOTRA, 울산정유단지는 오늘날 한국경제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발전을 향한 한 지도자의 큰 그림 속에서 탄생한 역사의 산물이다. 전시경제를 선포한 문 대통령도 이러한 한국 산업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미래를 향한 큰 그림을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 속의 경제 재도약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