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다] 한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폭력만 없을 뿐, 차별적이다"

입력 2020-06-09 16:20수정 2020-06-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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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거주 흑인 커뮤니티 'BSSK' 회원 6인 "조지 플로이드 시위, 너무 늦었다"

(김다애 디자이너 mngbn@)

지난달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46세 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 당시 그는 경찰의 무릎에 깔려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지만, 경찰관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을 잃어 병원에 이송된 그는 결국 이날 밤 사망했다.

이러한 과정이 담긴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파문이 일었고,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틑날인 26일부터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외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이는 미국 전역, 나아가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전 세계로 확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해 유명인들이 '블랙아웃 화요일'(6월 2일 음악 업계가 일손을 내려놓는 '조용한 저항') 캠페인에 동참하며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일반인들도 SNS 해시태그에 '#Blacklivesmatter'를 달며 연대했다. 이달 6일엔 명동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행진에 시민 200여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시위가 점점 격화되고 약탈과 방화, 총격 사건까지 잇따라 한인들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의 여론은 조금씩 갈리기 시작했다. '폭동'과 '평화시위'를 구분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시작한 것. 한국인들은 해외와 비교했을 때 유독 폭력시위에 민감하다. 촛불 하나만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도 한몫했을 것이다.

▲BSSK는 한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거주하며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사진제공=BSSK)
"인종차별은 반대하지만, 폭력은 잘못됐다", "약탈당하는 상점들은 무슨 죄냐"라는 비판과 우려 섞인 글로 시작됐지만, 비판은 점점 거세졌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 부검 결과 마약 성분이 검출되고, 강도 전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도를 넘은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흑인이 그렇지 뭐."

과연 우리나라는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로울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36만7000여 명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미국 내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있지만,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흑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BSSK'(Brothas&Sistas of South Korea)는 한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공동체다.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된 멤버만 약 1만4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2008년 처음 모임을 개설해 한국 내에서의 유용한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까진 서로 만나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투데이는 BSSK 회원 돈태 일리(Dontae Ealy),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 이름을 알리지 않은 회원 4명 등 총 6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흑인 사망 항의 시위에 대한 생각,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들어봤다.

▲2014년 11월 장난감 총을 든 12세 흑인 소년 라이스가 클리블랜드 경찰관에 의해 총살됐다. (AP/뉴시스)

◇"조지 플로이드 시위, 훨씬 전에 시작했어야 했다"

조지 플로이드는 지난달 25일에 사망했지만, 미국 경찰에 의해 사망한 흑인들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2014년 8월 9일 비무장한 18세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했다. 경찰은 마이클 브라운이 편의점 강도 용의자였고, 그에게 총을 쏜 것은 마이클 브라운 일행과 거친 몸싸움을 하다 발생한 정당방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건 목격자들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브라운을 경찰이 뒤쫓아 사살했다'고 진술했다.

석 달 뒤인 11월 24일에는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12세 흑인 소년이 경찰에게 사망했다. 경찰은 '장난감 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손을 들라는 명령을 듣지 않자 사살한 것이다.

"이번 조지 플로이드 시위는 이미 늦게 일어난 것이에요. 우리는 오랜 기간 소극적으로 행동해 왔죠. 평화로운 행군을 시도했고, 무릎을 꿇었고, 책과 시, 영화를 만들었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무시됐어요. 그래서 우리는 미국이 우리의 말을 듣도록 항의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야 변화가 뒤따르니까요." - 돈태 일리(36·미국인)

마이클 스미스(28·미국인)는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와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의 가족에 대해선 알고 있다. 마이클은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곳에서 자랐고, 같은 학교에 다녔고, 같은 일을 했다. 나이 차이는 조금 있을지언정 마이클은 자신이 조지 플로이드와 매우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경찰의 권력 남용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여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기뻐요. 그곳에서 시위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 마이클 스미스

▲미국 내 인종차별 항의시위가 격화하는 가운데 한인 점포들도 잇따라 약탈 피해를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지배가 지금까지 지속됐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소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지자, 많은 국민이 그의 사망을 추모했다. SNS를 통해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해시태그를 걸기도 했다.

"시위에 공감하고, 분노를 이해하는 한국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가족과 떨어져 있어 매우 걱정되는 상황인데, 이 고통을 공감하고 싸움을 지지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 마이클 스미스

그러나 미국에서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의 여론은 바뀌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에는 반대하고, 평화적인 시위는 지지하지만 폭력성을 가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들은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저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웠던 일들을 상기시켜주고 싶어요. 지금 시위가 너무 과격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법적으로 독립했지만 일본은 떠나지 않았고, 지금도 부를 독점하고, 한국인은 좋은 학교에 갈 수 없고, 의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때 만일 일본 경찰이 한국인을 부당하게 살해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친 조직적인 억압과 권력 남용을 겪어 왔습니다." - 마이클 스미스

BSSK 회원인 A(37·캐나다인) 씨는 한국에서 시위가 폭력적이라고 비춰지는 것은 언론의 편향적 보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불에 탄 한인들의 상점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시위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약탈과 방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방화와 약탈이 아닙니다. 폭력 시위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모든 문제를 덮으려고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를 '흑인 폭동' 또는 '흑인 시위'라고 칭하는 것도, '흑인'이라는 단어를 붙여 흑인들을 나쁜 시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 캐나다인 A

한편, BSSK 회원 B(여·미국인) 씨는 폭력을 비난하면서도, 사태를 초래한 폭력은 비난하지 않을 수 없겠냐고 호소했다. 그는 미주 한인 사회가 흑인 공동체와 연대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인들은 흑인 마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흑인을 고용하지 않고 무례한 인종차별을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시위는 모든 인종, 신념, 민족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어요. 단순한 흑인 폭동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자 부당한 제도 해체를 위한 항의입니다." - 미국인 여성 B

▲5월 중순, 한산한 이태원 거리. (뉴시스)

◇"이태원 집단감염, 외국인으로서 두려움의 시작이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나 싶었던 5월 초, 이태원을 시작으로 확진자가 다시 급증했다. 이태원이 국내 외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장소인 만큼, 외국인 확진자의 수도 증가했다. 원어민 강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는 이태원을 가지 않았더라도 외국인 강사라는 이유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코로나19가 지속하는 동안 한국 정부는 일을 잘 처리했고, 저는 한국에 있는 것을 감사했어요. 하지만 이태원 집단감염 이후 상황이 달라졌죠. 이후 모든 외국인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솔직히 많은 클럽이나 술집은 흑인들을 업소에 입장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불쾌했죠." - 미국인 여성 C

이후에 외국인 강사들은 고용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는 것조차 두려웠고, 한국에 있는 동안 식당과 술집을 방문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기도 했다. C(35·여·미국인) 씨는 "한 한국인은 엘리베이터에 나와 함께 있지 않으려고 내가 들어서자마자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 장면. 백인이 길을 물을 땐 친절하게 답하지만, 흑인이 길을 묻자 당황하며 무시한다. (연합뉴스)

◇흑인 옆에 'ugly' 백인 옆에 'beautiful'…"우리는 차별에서 자유로운가"

세계화 시대에 '다문화'는 사회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떠올랐다. 초등교육에서부터 '다문화 교육'을 강조해왔고, '인종차별'은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것이 됐다. 차별의 반의어이기도 한 '공정'은 현시점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기도 하다.

그러나 BSSK 회원 일부는 한국이 "미국만큼이나 차별적"이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물리적으로 폭력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진=SBS '웃찾사-레전드 매치' 캡처)

"한국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혐오하도록 배워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흑인 그림 옆에는 'ugly(추한)'라는 단어가 있고, 백인 그림 옆에는 'beautiful(아름다운)'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TV에서도 흑인은 악당으로 나오거나, 외모를 조롱받아요." - 미국인 여성 B

이들은 차별을 느낀 경험들을 하나씩 말해줬다. 지하철에서 옆에 앉기를 꺼리고, 외모를 비웃고, 채용을 하지 않고, 몸을 더듬고, 택시는 서지 않고, 가게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다. 심지어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얼마야?"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매춘부'라고 여긴 것이다.

"저는 흑인이지만 한 명의 사람이에요. 저는 제 외모에 따라 좋은 대우든, 나쁜 대우든 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가 누구인지에 따라 대우받고 싶습니다." - 마이클 스미스

▲조지 플로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한국에 있는 것 기쁘지만 때론 지쳐…함께 해주길"

C 씨는 많은 흑인이 한국에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일할 기회가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가끔이라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백인 미국인들이 아시아인들을 조롱하기 위한 영화를 만들었을 때, 흑인 사회는 이를 지적함으로써 아시아인들을 지지했어요. 그리고 수천 명의 흑인이 6·25전쟁에서 한국을 위해 싸웠다는 것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 미국인 여성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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