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에 막힌 '주거복지'…'주거급여 애물단지' 된 자동차

입력 2020-06-15 10:30수정 2020-06-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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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박종화 기자. pbell@

A씨에게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애물단지'다. 지방 소도시 B시의 공공 임대주택에 사는 그는 얼마 전 주거급여(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에게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제도)를 신청했다. 최근 가게 영업이 어려워져서다. 실랑이 끝에 B시는 A씨의 신청을 반려했다. 자동차 때문이다. 다른 조건은 다 충족했지만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로 주거급여 심사에서 A씨는 탈락했다.

몸이 불편한 A씨가 가게를 꾸리려면 자동차는 꼭 필요하다. A씨는 팔려했으나 법적 문제로 처분이 막혔다. A씨로선 생계를 건 진퇴양난 상황에 빠졌다.

사회적 약자의 주거 안정을 위하겠다며 도입된 주거급여 제도가 자동차 때문에 혼선을 빚고 있다. 현실성 부족한 기준 탓에 주거 안전망에 구멍이 생긴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선 자동차가 있으면 주거급여를 포함해 모든 복지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지나치게 높은 소득 환산율 탓이다. 소득 환산율은 재산 가치를 월(月) 소득으로 환산하는 비율이다. 일반 재산의 소득 환산율은 4.17%이지만 자동차는 100%다. 주거용 재산(월 1.04%)과 금융재산(월 6.26%)과도 비교할 수 없다. 같은 500만 원 가치라도 일반 재산은 20만8500원(500만 원x4.17%)이 한 달 소득으로 인정되지만 자동차는 500만 원이 고스란히 소득으로 잡힌다.

이 같은 소득 환산 제도는 사실상 '국민감정법'이란 비판을 받는다. 주거급여를 포함해 각종 사회급여 제도 지침이 되는 보건복지부 지침(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안내)엔 "자동차를 보유하는 경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 보장하기 곤란하다는 현재의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월 100% 환산율을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복지당국 관계자는 "국민 정서나 제도 취지를 볼 때 자동차 소유자에게 사회 급여를 주기는 어렵다"며 "안 준다고 명시할 수는 없으니 100% 소득환산율을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용 자동차의 경우 소득 환산율을 낮춰주지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자동차의 소득 환산율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009년에도 자동차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호소문이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전해졌지만, 청와대와 지자체에서 나서 자동차 처분을 돕는 선에서 끝났다. 2018년엔 대통령 직속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형평성 차원에서 자동차 등 재산의 소득 환산율을 하향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급여마다 수혜 대상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소득 환산율을 적용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며 "이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관계 부처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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