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공약 ‘직무급제’ 현장 도입 어려운 이유는
기관 간 임금 격차 커 '걸림돌'
노사 간 사회적 합의 전제돼야
개혁 지향화되 방법 고민 필요
“근무 기간만 길면 높은 보수를 받는 기존 ‘철밥통’ 관행을 깨고 공정성·효율성을 높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3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노동혁신 과제 중 하나로 직무급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핵심 방안으로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개혁을 주창하며 도입하려고 한 직무급제는 이를 현실화하는 데 있어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올해부터 공공기관에 직무급을 전면 도입하기로 한 데 이어 1월 고용노동부는 이를 민간 기업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정부는 직무급 도입을 각 기업의 노사 자율에 맡기되, 직무급 도입 매뉴얼을 기업 8000여 곳에 배포하고 올해부터 희망 기업 16곳을 대상으로 직무급 도입을 위한 무료 컨설팅을 시범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직무급 확대를 위한 협의도 해나갈 방침이다.
기본급 지급 방식을 호봉에서 직무급으로 전환하는 직무급제는 현재 맡은 직무의 성격·난이도·책임 강도를 평가해 합당한 보수를 주는 제도다. 직무급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에 가장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무급제의 특징은 △고도로 체계화한 작업 과정과 명확한 직무 정의 △직급 수준에 적합한 직무 배치 △개별 직무의 가치를 매길 직무평가 작업 등이 선행돼야 한다. 고려 요소로는 △명확한 1인 직무 범위 △직무 이동 빈도가 낮은 조직에 용이한 적용 △도입 시 요구되는 많은 시간과 비용 등이 꼽힌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노사 당사자 간 사회적 합의 또한 전제돼야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내고 “노동시장 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임금체계의 연공급이 아닌 재벌·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있다”며 “(직무급 도입은) 오히려 기업 주도의 임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임금체계는 노사가 협상을 통해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게 상식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제점으로는 연공호봉제, 정기공채 방식의 전통성 등이 꼽힌다. 공채 방식은 직무관련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연공서열식으로 임금과 승진이 결정되는 단점이 지적됐다. 그러나 국내 풍토에서 정기공채 방식이 범용인재를 뽑는 데 적합하고 유연한 인력 활용, 높은 조직 충성도 등으로 자리잡아 온 것이 현실이다.
반면 산별노조인 독일의 경우, 직무에 맞는 사람을 개별적으로 뽑아 기관이 다르더라도 동일 직무에 동일 임금을 주고 있다. 진통이 거센 만큼 기재부는 노사합의 자율적, 점진적 도입을 통해 정부 중심의 일방적, 즉흥적 개편 작업은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각에서는 방법론적으로 단일한 공공기관에서 직무급제를 적용하는 것을 강조한다. 신생 공공기관의 경우 도입이 수월하다. 직무급제를 전면 도입한 공공기관은 현재 총 5곳으로, 올해 3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을 포함해 한국석유관리원, 새만금개발공사, 한국산림복지진흥원, 한국재정정보원 등이다. 이들 기관은 직원이 60∼500명 이내로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이다.
하지만 단일한 공공기관 내 적용은 직무급제의 필요성과는 이율 배반한다는 지적이다. 기관 간 임금 격차가 심한 상황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단일한 기관 내 정규직의 직무급을 도입해 임금 격차를 맞춘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도 직무급 비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지만, 상급 간부에 한해 등급화한 직무수당을 줘 직무역할급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관 간 임금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단일한 기관 내 정규직의 직무급을 도입해 임금 격차를 맞춘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단계적으로 공공기관 간 동일 직무, 동일 임금으로 전환하려는 유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이종선 교수는 “기관 간 호봉 테이블의 기울기부터 조정해 완만하게 개혁해 나가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개혁이란 이름으로 지향성을 갖되, 고민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공공기관 임금 체계 개편을 위해 영국처럼 ‘페이리뷰’ 식의 임금연구회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