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의원은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흑인 인권운동을 이끈 거물 6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마지막 생존자였던 루이스 의원이 영면에 들면서 거물들의 흑인 인권운동은 역사로 남게 됐다.
루이스 의원은 흑인 차별을 정당화했던 법과 제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학교와 버스, 식당 등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짐 크로 법’ 반대 투쟁에 앞장섰고 흑인들의 출입을 금지한 식당 앞에서 연좌 농성도 벌였다. 1965년 앨라배마주(州)에서 벌어진 셀마 행진을 이끄는 과정에서 땅에 쓰러진 채 경찰관에게 맞아 피 흘리는 모습이 TV 전파를 타기도 했다.
198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의원으로서 정계에 입문한 루이스는 1986년 조지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20여 년 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데 힘썼다. 2011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받기도 했다.
미국 전역에서 루이스 의원 별세에 대한 애도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와 생전에 껄끄러운 관계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하루 뒤인 18일 정부 기관에 조기 게양을 명령하며 루이스 의원을 기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에서 루이스 의원에 대한 기억과 오랜 공직 봉사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조기 게양을 명한다고 밝혔다. 오후에는 트위터를 통해 “민권 영웅 존 루이스의 별세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다. 멜라니아와 나는 그와 그의 가족에게 우리의 기도를 보낸다”고 전했다.
루이스 의원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러시아가 트럼프 캠프와 공모했기 때문에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2017년 1월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존 루이스 의원은 끔찍한 모습으로 허물어지는 지역구를 바로잡는 데 시간을 더 써야 할 것”이라면서 “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고 공격했다.
이후에도 둘의 갈등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루이스 의원은 트럼프를 겨냥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한편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성명을 내고 “그는 언제나 우리가 어디를 향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고 있었던 도덕적 잣대였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