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문재인 정부 22번째 부동산 규제인 ‘7·10 대책’도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폭탄’이다. 문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에서 “투기로 돈 못 벌게 한다”고 되풀이했다. 매물이 쏟아지고 치솟은 집값이 떨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값이 오르면 더 뛰기 전에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고, 내릴 것이라는 심리가 지배하면 안 사는 게 주택시장 속성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향후 1년간 집값이 상승한다는 응답이 61%였고, 내릴 것으로 본 이는 12%에 그쳤다.
끝없이 시장과 싸우겠다는 오기(傲氣)는 부동산 문제를 정치로 재단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민생의 가장 민감한 이해가 부딪치고, 정책으로도 복잡한 사안이 부동산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경제와 부동산에 대한 식견이 의문스러운 정치인 출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앉혀 정책을 주도하게 하고, 서울 강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타깃으로 삼기 시작했다.
비싼 집에 퍼붓는 세금폭탄은 가장 손쉬운 편가르기다. 부자에 대한 공격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을 부각시키고 증오를 부추기는 프레임은, 집 없는 서민들의 박수를 받는 포퓰리즘이자 지금 집권세력의 정치적 에너지다. 다주택 보유가 죄일 수 없다. 비싼 집이라 해도, 집 한 채 가진 사람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옳지 않다. 그들 대다수는 수십 년 고생하고 알뜰히 돈 모아 내집 장만의 꿈을 실현한 사람들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 올려놓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여기에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는 교육 포퓰리즘으로 ‘8학군’ 수요를 자극하고, 집값·전셋값을 끌어올린 데 이르면 뭐하자는 건지 뒤죽박죽이다. 그래 놓고는 집값 비싸다고 과도한 세금 매기고, 집 사는 걸 투기로 죄악시한다.
부동산시장 또한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동한다. 지금까지 22차례 대책은 일관된 수요 억제였다. 세금폭탄에 은행 대출 조이고, 거래 막고, 아파트 청약 어렵게 했다. 그러면서 재건축 차단하고 분양가상한제로 공급을 계속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집값 잡겠다면서 집값 오른다는 신호만 쏟아낸 것이다. 은행 돈 빌려 집 사는 사다리까지 걷어차, “이번 생에서 내집 마련은 틀렸다”며 젊은 층은 절망한다. 강남을 누르니 풍선효과로 튀어오른 서울 집값은 더욱 견고한 성을 쌓았다. 거듭된 정책 실패에 따른 학습효과이고 시장의 복수다.
김현미 장관은 집값 폭등이 지난 박근혜 정부가 규제를 푼 탓이라고 타령하더니, “서울 주택공급은 부족하지 않다”고 강변했다. 정말 모르는 게 아니면 의도적인 국민 기만(欺瞞)이다. 정부 통계에서 서울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주택보급률은 2018년 기준 95.9%이다. 선호도 높은 아파트 보급률은 절반 이하인 45%다. 나머지는 단독·연립·빌라·다세대 주택 등이다. 서울 가구의 자기 집 가진 자가보유율은 40% 후반이고, 수도권을 합쳐 54.2%다. 대략 서울·수도권 가구 절반이 내집 장만을 꿈꾸고,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가려는 예비수요자들이라는 얘기다. 살기 좋은 곳 아파트 공급은 늘 부족하고, 값이 오르는 근본 이유다. 이 현실부터 인정하지 않으니 수없이 쏟아내는 집값 대책은 계속 헛발질이다.
부동산정책의 전제도 이 만성적 공급부족이다. 하지만 다들 살고 싶어하는 곳에 집 지을 땅이 더 없다.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 쾌적한 주거환경, 교통·교육·의료 인프라, 그리고 직주(職住)근접성을 갖춘 주거단지를 만들고 도시를 재생시키는 것이 해법이다. 정권이 그토록 때려 잡으려는 강남은 지난 40여 년 동안 만들어진 도시다. 장기 계획, 종합적인 경제·사회 정책의 큰 틀로 시작해야 하는 지난(至難)한 과제인데 그저 세금폭탄으로 집값과의 사생결단에 급급하다. 이제 공급을 늘린다며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낸다. 정부 내 혼선은 둘째고, 순서부터 잘못됐다. 도심 고밀도 개발, 재건축 활성화가 먼저다. 시장은 냉소한다. 이제 2년도 안 남은 문재인 정부는 끝내 부동산 수렁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만 더 커지는 결과일 것이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