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생체 내 단백질 촉매인 효소를 모방해 공급자 또는 개발자가 원하는 화학반응만 선택적으로 유도하되 안정성도 갖춘 기존에 없는 새로운 개념의 산업용 촉매 개발에 성공했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는 생명화학공학과 최민기, 화학과 김형준 교수 공동연구팀이 실생활에 흔히 쓰이는 플라스틱, 비닐 등의 재료인 화학 원료를 만들 때, 자연계 효소와 동일한 원리로 반응물을 선택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고성능 산업용 촉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30일 밝혔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화학반응 경로 중 목표하는 반응물을 원하는 생성물로 선택적으로 전환해줄 수 있는 촉매를 디자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촉매 중 가장 효율이 좋은 촉매는 자연계 및 우리 몸 등에 존재하는 효소다.
이와 달리 석유화학 산업에서 이용되는 촉매들은 알루미나·실리카·제올라이트와 같이 딱딱한 무기물 표면 위에 금속을 퍼뜨려 노출한 구조로 구성돼 있다. 이런 형태의 촉매에서는 금속 표면에 모든 반응물이 흡착되기 쉬워 특정 반응물만을 선택적으로 생성물로 전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대부분 산업용 촉매 설계에서 무기 소재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열화학적 안정성이 뛰어나 다양한 반응 조건에서도 촉매가 안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민기·김형준 교수 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단백질과 같이 부드럽고 유동성이 있으면서도 매우 높은 열화학적 안정성을 지닌 '폴리페닐렌설파이드(PPS)'라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물질을 이용해 고분자 막이 금속촉매 활성점을 감싼 형태의 신개념 촉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PPS는 내열성과 내화학성이 매우 뛰어나 자동차나 항공우주 산업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상용 고분자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촉매를 이용해 석유화학의 에틸렌 생산 공정 중 매우 중요한 아세틸렌 수소화 반응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의 원료는 90% 이상이 나프타인데, 나프타분해시설(NCC)에서 이를 분해해 에틸렌 및 기타 기초유분들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에틸렌은 주변에 흔한 플라스틱, 비닐, 접착제, 페인트까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데 이용하는 기본 핵심 화학 원료다.
나프타를 분해할 때 생산되는 에틸렌에는 미량의 아세틸렌이 불순물로 함께 포함돼 있다. 아세틸렌은 추후 에틸렌을 이용해 화학제품을 만드는 데 매우 치명적이므로 미량의 아세틸렌을 수소화 반응으로 제거해 주는 공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공정은 99% 이상 에틸렌은 건들지 않으면서도, 1% 미만의 아세틸렌만 선택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난제가 존재해왔다.
공동연구팀은 새로 개발한 촉매를 이 공정에 적용한 결과 1% 미만의 아세틸렌은 금속 입자를 둘러싸고 있는 고분자막을 투과해 쉽게 전환되는 대신 99% 이상의 에틸렌은 고분자막에 가로막혀 촉매 반응이 진행되지 않아서 기존 팔라듐(Pd) 촉매와 비교할 때 선택도는 2배 이상, 안정성은 10배 이상 증진된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송현, 신승재 박사과정 학생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7월 8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최민기 교수는 "자연계의 효소를 모방해 원하는 반응물만 선택적으로 전환할 수 있으면서도 매우 우수한 안정성을 갖는 촉매 설계 방법은 세계적으로 보고된 바가 없던 새로운 개념"이라면서 "향후 높은 선택도가 있어야 하는 다양한 화학반응에 폭넓게 응용 및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 지원사업과 LG화학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