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게임학회장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년간 4차산업혁명의 도입을 둘러싸고 많은 난관에 직면해 왔다. AI나 원격의료, 공유차량 같은 새로운 혁신은 총론적인 찬성에도 불구하고 각론에 들어가면 여러 이익집단의 반대에 막혀 진전되지 못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산업적 기득권은 엄청난 장벽과 방해물로 작동해 왔다. 이러한 장애물을 일거에 제거해 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이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접촉이 제한되면서 모든 기업들은 대면근무를 최소화하고 재택근무나 비대면근무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은 올해 연말까지 대부분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IT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출근시간의 유연화나 재택과 출근의 혼합 방식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상출근을 하더라도 코로나 감염자가 생기면 언제든지 대면근무를 비대면근무로 전환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IT기업의 근무방식 변화는 생산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 초기 기업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재택근무는 대면근무에 익숙한 화이트칼러에게 환영을 받았다. 출근시간에 쫓기는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유연한 근무 시간이나 자유로운 근무 장소 선택은 직장인의 로망이기도 하다.
코로나 이전에 한국 기업들은 막연하게 재택근무에 부정적이었다. 재택근무는 비효율적이거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가 곤란하다는 등의 선입관 때문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선제적으로 재택근무를 추진한 글로벌 기업 중 하나가 일본 도요타자동차이다. 일본은 최근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구인난에 빠져있다. 그래서 2016년부터 토요타는 R&D 부문을 제외한 일반사무직과 영업직을 강제로 재택근무시키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도요타 같은 기업은 재택근무 시스템을 이미 도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를 맞아도 무리없이 근무 체계를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한국기업은 강제로 코로나 사태에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버렸다.
준비되지 않은, 그리고 예상치 않은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가 연장되면서 한국의 IT기업에게도 고민이 생기고 있다. 기업 측면에서 과제는 생산성과 업무효율성이다. 우리나라 화이트칼러 노동 생산성은 타 OECD국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단기간의 생산성 향상은 더 어려운 문제이다.
화이트칼라를 블루칼라 방식으로 통제해 생산성 향상과 혁신이 가능했다면 우리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미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테일러리즘’, ‘포디즘’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짐은 없다. 고작해야 ERP(전사적 자원관리)나 RPA(로봇프로세스 자동화) 같은 소프트웨어를 투입해 제어하거나, 스톡옵션 부여, 비전에 대한 공유 등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를 도입하는 한국의 IT기업은 비생산적 노동을 제거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양적인 노동이 아니라 ‘노동의 질적 전환’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도 문제는 발생하고 있다. 일과 휴식의 구별이 안되는 문제가 그것이다. 재택근무를 통해서 일과 휴식의 구별이 모호해지면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폐해가 발생한다.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이 불규칙해지면서 건강을 해치는 문제도 발생한다. 동료나 상하 직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약화되면서 인간관계에서 고립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과 삶의 조화, 기업과 개인의 조화도 어려워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환경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중요한 화두이다. 그와 동시에 코로나는 기업에게도 새로운 조직방식, 작업방식으로의 전환이라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한국의 IT기업이 가장 먼저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기대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