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자 4000명 등 피해자 대규모 속출...규모 4.5 지진과 맞먹는 충격, 키프로스서도 감지 -사고인지 공격인지 원인 불분명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저택도 피해 -코로나로 경제 위기 심각...여기에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져 앞날 막막
지중해 연안 국가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4일(현지시간) 저녁 두 차례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규모 4.5 지진과 맞먹는 충격파에다 거대 버섯구름 같은 분홍색 연기가 피어올라 폭발 현장 일대를 휘감는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폭발 원인을 두고는 단순 사고인지 외부 세력에 의한 공격인지 추측이 엇갈리고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큰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4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저녁 베이루트 중심부에서 가까운 항만 지구에서 초대형 폭발이 두 차례 일어나 도시가 완전히 쑥대밭이 됐다. 엄청난 충격에 항구는 물론 인근에 있던 건물과 차량들까지 순식간에 붕괴되거나 파손됐다. 도시의 거리는 산산조각 난 유리로 가득 찼고, 사상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10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4000여명으로 집계됐으나 사상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폭발의 충격파는 실로 엄청났다. 현장에서 10㎞ 떨어진 건물의 유리창이 깨질 정도였다. 규모 4.5의 지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베이루트에서 240㎞ 떨어진 인근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현장에서 약 5㎞ 위치에 있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 저택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의 부인 캐롤은 브라질 언론에 “우리는 무사하지만, 집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폭발 참사가 일어난 베이루트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해 폭발 원인 규명을 촉구했다.
일단, 테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 기자회견에서 ‘끔찍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미국 군 당국은 폭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 관리들은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징후를 보지 못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거리를 뒀다. 레바논 민병대 헤즈볼라와 적대 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 이스라엘 당국자 역시 관여를 부인하며 트럼프의 발언을 일축했다.
현재 레바논 당국은 베이루트 항구에 장기간 적재돼 있던 인화성 물질을 폭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해당 창고 안에는 2750t에 달하는 질산암모늄이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6년 동안 적재돼 있었다고 한다. 질산암모늄은 농업용 비료나 화약 등 무기 제조의 원료로 쓰인다. 공기 중에서는 비교적 안정된 상태이지만 온도가 높거나, 밀폐된 용기 안에 들어있거나, 가연성 물질에 닿았을 때는 폭발의 위험이 있다. 아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책임자들을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폭발은 가뜩이나 레바논이 경제적·정치적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다. 레바논은 올해 3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는데, 여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 국가부채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70%에 달하며, 실업률 역시 높다. 미국 달러 대비 레바논파운드 가치는 암시장에서 1년 전보다 80%나 떨어져 식료품 등 물가가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일에는 정부 개혁 지연을 이유로 나시프 히티 외무장관이 취임 7개월 만에 사임하는 등 정치적 혼란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