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22년부터 10년 동안 연 400명씩 총 4000명을 확충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늘어난 400명 중 300명은 지역병원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중증·필수의료에 종사해야만 하는 ‘지역의사제 특별전형’으로 뽑을 예정이다.
하지만 당정의 의료 인력 확충 방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사 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앞서 7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를 필두로 한 전공의 파업이 진행됐으며, 의협은 14일 '제1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9일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 찬성 의견이 58.2%로 반대(24.0%)보다 많았다.
이처럼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의사들이 파업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업에 동참하는 의사들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다.
◇"당정, 현장 목소리 전혀 반영하지 않아"
당정의 의료 인력 확충 방안에 대해 의사들은 공통으로 '소통'의 부재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정책을 세우기 전에 '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현장 인력과 논의해야 하는데 당정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김형철 대전협 대변인은 "(정부의 증원 방안에) 반대한다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할 때는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총선 공약으로 나온 이후 당정의 발표가 있을 때까지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굉장히 세밀하게 조정돼야 하는 문제"라며 "단순히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수를 늘리는 게 아니고 심도 있는 연구와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A 씨 역시 논의 부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A 씨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의료 현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밝혔다.
◇"의료 인력만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 아냐…적절한 보상 필요"
지역병원에서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종사토록 하는 '지역의사제'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지역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의무복무 기간에 인턴·레지던트 등 병원에서의 수련 기간 5~6년이 포함돼 있는데, 실제 지역 의사로 근무하는 기간이 4~5년에 불과하고, 그 뒤 지역을 떠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취약지나 특정 분야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현상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빠져 있다"고 했다.
김대하 대변인은 "일반적으로도 자녀 교육 등에 있어서 수도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듯이 의사도 마찬가지"라면서 "지방에 의료대학을 만들고 특정 인력을 공급해놓는다 한들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의무 복무 이후에) 그곳을 선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는 "종사하는 사람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해결될 문제"라며 "(지방에 종사하는 의사들에게) 합리적인 보상을 해서 그쪽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지방 의료 시설에 대한 환자들의 불신 역시 지적했다. 레지던트 A 씨는 "실제로 지방 환자들의 상당수는 서울 소재의 병원으로 먼저 가는 경향이 있다"며 "지방의 환자들은 의사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 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파업으로 인한 국민 불편 송구…필수 기능 유지할 것"
7일 진행된 '전공의 파업'과 14일로 예정된 '의사 총파업'에 대해 의사들은 국민에게 피해를 주려던 목적은 아니라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의사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대하 대변인은 "(파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며 "의사가 파업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우려스럽고 두려운 상황일 수 있어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으로 국민께 피해를 드릴 목적은 당연히 아니다"면서도 "(7일) 전공의 파업에서도 사고는 나지 않았다. 전공의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존 의료진들이) 필수적인 기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철 대변인은 국민의 반대 여론에 대해 "홍보 부족일 수도 있고, 정부의 프레임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의사들은) 일단 논의부터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일각에서는 마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는 여론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의사 수를 늘리는 문제는 국민의 여론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레지던트 A 씨는 "젊은 의사는 물론이고 의대 학생들까지도 많이 (목소리를 내는 데) 참여하려는 상황"이라며 "학생들의 경우에는 단체 수업거부 또는 국가고시 거부까지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A 씨는 "(의사들이 근무가 많아) 평소에 의견을 표출할 방법 자체가 거의 없다"며 "파업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휴가를 내고 합법적인 선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최대치의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실련 "의사들의 총파업, '밥그릇' 싸움 맞다…강력하게 조치해야"
반면, 400명을 증원하는 정부 안보다도 의대 정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는 의사들의 파업 행위가 이른바 '밥그릇' 싸움이라면서 정부 차원의 강력한 파업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남은경 경실련 정책국장은 "의협이 (파업을 통해 정부와) 협상을 하고 싶다는 것 아니겠냐"며 "돈과 연관되지 않으면 그렇게 (파업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유사시에 의사들이 국민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특별히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인식시켜줘야 한다"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강력하게 제재하면 진료거부 등의 파업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남은경 국장은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에 대해 "수가를 얼마나 늘려야 하고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10여 년간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을 써봤지만,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안들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추이라든지 의료 이용량 등을 고려했을 때 최소 2000명 이상 증원을 해야 의료 인력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며 "지역 공공의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역별로 공공 의대를 설립하고 지역 공공의사를 별도로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정부 안도 제대로 된 방안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의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어설프게 절충안이 나온 것이다. 정부 안에 대해서 계속 문제를 지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