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현직 대법관이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해 증언했다.
이동원 대법관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속행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대법관은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던 2016년 통진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다.
검찰은 임 전 차장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등이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수뇌부 입장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을 당시 항소심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통진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1심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법원에서 다시 심리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이 헌재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항소심은 법원에 결정 권한이 있다고 보고 재판을 심리해 원고패소 판결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 등을 통해 전달된 문건이 재판에 영향을 준 것으로 의심한다.
이날 이 대법관은 문건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이 전 실장과는 연수원 때부터 친한 사이로 식사를 같이하자고 연락을 받았다”며 “식사가 끝나고 읽어보라며 줬다”고 진술했다.
이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면서도 “판사는 사건에 대해 다른 사람이 접근해오면 긴장하고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문건을 재판부 구성원과도 공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대법관은 “선례가 없는 법률적 문제에 봉착해 법원행정처에서 검토했으면 참고할만한 게 있을까 해서 보긴 했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할 텐데 읽어서 면목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결에는 문건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아울러 “모든 것은 재판부 의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재판부에 접근하는 것은 절대로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않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면서도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의 공방이 있으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증인석에 서게 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의 무게 가운데 재판부가 많이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했다”며 “잘 마무리해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