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베니스 인구의 40%가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기에 이 곳은 타격이 크다. 하지만 베니스는 21세기에 들어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으로 계속 씨름해온 곳이다. 도시의 수용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관광선이 다니는 운하 곳곳이 쓰레기로 넘쳐났다. 산마르코 광장 인근의 뒷골목은 관광객으로 넘쳐 산책하기가 버겁다. 삶의 질 저하를 걱정하는 시민들은 불만이 많지만 관광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터라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베니스의 고민은 프랑스의 파리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도 공유된다. 유럽은 관광대국이 몰려 있는 대륙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세계에서 상위 5위 안에 드는 관광대국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8900만 명이 프랑스를 방문했다. 프랑스 인구의 1.5배 정도다. 2위는 스페인(8300만 명), 5위는 이탈리아(6200만 명)가 차지했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꽤 높다. 스페인은 14.3%, 이탈리아는 13%를 기록했다(2019년 말 기준). 코로나19로 사망자가 급증해 봉쇄를 단행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은 이유도 이처럼 관광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지난 6월에 봉쇄를 해제했다가 최근 전염병 감염자가 급증하자 다시 제한적인 봉쇄를 단행했다.
세계적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받은 유럽 관광업계는 하루빨리 일상으로의 복귀를 원한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에서 관광업계는 1200만 명 정도를 고용하며 GDP의 10%를 차지한다. 이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3.5 배 정도 높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보다 근본적으로 오버투어리즘 대책을 성찰해보자는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온다.
그런데 오버투어리즘은 먼 나라 일이 아니다. 인구 70만 명의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지난해 1500만 명이 넘었다. 이렇게 관광객이 몰리면서 제주도 토박이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대도시를 벗어나 고도와 청정 자연을 방문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거의 무한하다. 하지만 관광자원은 유한하고, 사람의 손발이 닿을수록 훼손된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관광을 모색해보는 오버투어리즘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일시적으로 관광객을 줄였을 뿐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유럽 등 각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2년간 관광산업은 침체됐다. 그러다가 2010년 경기회복과 함께 9년간 세계 관광산업은 고속 성장했다. 2009년 -4%에서 이듬해 7%, 그리고 2017년에도 7%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최소한 3%포인트 웃도는 성장세다.
코로나19 발발 후 많은 식자들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구분하려 한다. 그만큼 코로나19는 우리가 인식했던 세계관을 산산이 조각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으로 인식됐던 서방 국가들이 코로나 대응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환경 파괴로 인수공통 전염병이 확산되었음을 자각하게 해주었고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앞으로 유사한 전염병이 수시로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큰 변곡점이 저절로 인간 행동을 변하게 하지는 않는다.
세계적 대유행이 야기한 경제위기는 2차대전 후 최악이다. 2008년 미국발 ‘경기 대침체’보다 불황의 정도가 더 깊고 오래 지속된다. 그렇기에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좀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한다고 바라곤 한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 후 관광산업의 급격한 회복세를 보면 이번에도 이런 기대는 별로 소용이 없을 듯하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근본적으로 바꿀 계기를 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고를 주었을 뿐이고, 우리의 의지와 정책적 선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