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박사, 전 통계개발원장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고 또 사용하는 통계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단어가 그렇듯이 통계라는 말도 그 뜻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통계라는 말을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숫자를 세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 사업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의 숫자 등 이런 숫자들이 모두 통계라 할 것이다. 좀 더 현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통계는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을 계량화한 수치정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통계의 기본을 정하고 있는 법은 ‘통계법’이다. 그러면 통계법에서는 통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통계법에서는 말하는 통계는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통계작성기관이 통계청장의 승인을 받아 작성하는 수치정보’라 할 수 있다. 이 통계법상의 정의에 비춘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통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숫자가 법적으로는 통계가 아닌 것으로 된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국민들의 최고 관심사가 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는 통계청장의 승인을 받아 작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통계가 아니다. 외국의 통계작성기관들은 각자 자국의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관은 우리나라 통계청장으로부터 통계작성기관으로 지정된 것도 아니며, 그 통계 또한 통계청장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통계가 아니다. 매주 언론사들과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하는 정당 지지율이나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도 통계법상으로는 통계가 아니다. 이 뿐만 아니다. 정부 중앙부처 및 지자체 등에서도 정책적 필요에 따라 통계청장의 승인 없이 많은 통계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들 통계도 법적으로는 통계가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통계의 의미와 통계법에서 말하는 통계 간에는 그 정의상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아마 통계법에서는 통계청 혹은 국가통계기관이 직접 관할하는 통계만을 편의상 통계로 정의해 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통계라는 의미에 해당하는 용어는 통계법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렇게 통계의 뜻에 대한 상식적인 정의와 법적인 정의가 서로 다를 때 어떤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가? 우선 통계와 관련한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할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통계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는 통계와 관련한 토론에 참석하거나 강연을 할 때, 번거롭기 짝이 없지만 꼭 ‘통계법상의 통계’와 ‘일반적 의미에서의 통계’라는 말로 구분하고 말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말을 하기도 힘들고 의사전달에 있어서도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보고 ‘자동차’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하라면 일상생활의 의사전달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생기겠는가?
그러면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법률에서 통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많은 나라에서 통계에 관한 법을 두고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법률에서 통계의 정의를 분명히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통계라는 말은 이미 일반화, 보편화된 단어이기 때문에 새삼스레 법률적으로 규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법에서 통계의 정의를 명확히 규정할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마저 발생할 소지도 있다. 그 대신 이들 국가는 국가가 직접 관리할 필요가 있는 통계, 즉 우리나라 통계법상의 통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공식통계(official statistics)라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에도 국가통계(national statistics), 공적통계(公的統計), 정부통계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통계법을 개정할 때 통계에 대한 법률적 정의를 재검토하여 국민들의 상식과 법률 간의 간격을 좁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