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집단지성이 내리는 반지성적 결론

입력 2020-09-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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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영국 과학자이며 우생학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 여행 중 시골의 가축 품평회 행사에 갔다. 여기서 소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가 열렸다. 사람들이 표를 사서 자기가 생각하는 소의 무게를 적어 내 가장 근접한 사람에게 소를 상품으로 주기로 했다. 정확히 맞힌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800개의 표 중 숫자를 판독하기 어려운 13장을 제외하고 787장의 표에 적힌 무게를 평균했더니 1197파운드였다. 실제 측정한 소의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군중을 한 사람으로 보면 완벽한 판단력이다.

고(故)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저서 ‘담론’에서 이 사례를 전하며 “함께는 지혜다”라고 했다. 이른바 ‘집단지성’이다. 집단 예측이 개인 예측보다 10~25% 정확하다고 한다.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당연한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갑남을녀(甲男乙女)가 모여서는 안 된다. 지성이 모여야 한다. 가축 품평회에서 거의 완벽하게 소의 무게를 맞힐 수 있었던 것은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소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갖춘 다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조건은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평균치(합일점)를 찾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과정이다. 만약 행사 주최자가 소의 무게를 예측한 787표 중 임의로 하위 또는 상위 40% 의견을 무시했다면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집단지성’의 힘이 실리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저임금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기 위해 취임 초 2년간 각각 7.3%, 16.9%나 인상했다. 온전히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게 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급등한 최저임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3차와 4차 연도 최저임금은 각각 2.87%, 1.5% 인상하는 데 그쳤다. 문재인 정부의 4년간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결국 박근혜 정부와 비슷해졌다. 지난 정부들과 같이 매년 5~8%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게 올렸으면 부작용이 덜했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 공익위원 9명, 근로자 위원 9명, 사용자 위원 9명이 모였지만 합일점을 찾는 과정이 정부 코드 맞추기에 치우쳐 불공정하고 비정상적이었던 탓이다.

최근 산업계 주요 업종단체 26곳이 모여 제5회 산업발전포럼을 개최했다. 겉모양새는 포럼이었는데 내용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규탄대회였다.

산업계는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재산권 침해, 투기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능력 저하, 소송리스크 등 기업 입장에서 큰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수차례 공식, 비공식으로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국무회의는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국회 본회의에서도 과반을 점한 여당이 있으니 뒤늦게라도 개정안에 대한 첨삭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위헌 시비가 나올 정도로 임대인의 재산권을 대폭 제한한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충분한 논의와 상대방의 의견 청취를 거친 결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 경제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지성이 모였지만 같은 생각만 가진 이들이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이 말할 때 문재인 정부는 눈만 뜨고 귀는 닫았다.

말과 당나귀를 근연종(近緣種)이라고 한다. 생물을 분류할 때 쓰는 용어인데 유연관계가 깊은 종을 의미한다.

암말과 수탕나귀가 교배해 새끼를 낳은 것이 노새다. 노새는 유전적으로 열성형질을 가지고 있어 불임 등으로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컷 노새는 정자가 없는 불임이다. 암컷 노새의 경우 아주 간혹 말 혹은 당나귀와의 교배로 수태할 수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

정부와 여권은 지금부터라도 대화하기 즐겁고 편한 사람들과 자리하는 걸 삼가고, 마주보기 불편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래야 지성이 모여 반지성의 결론에 도달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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