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추석 풍속’마저 바꿨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추석연휴 기간 귀성인구가 줄어든 반면 전국 주요 관광지의 호텔과 리조트는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되는 등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방역이 취약한 재래시장은 더 한산해졌고 고향을 가지 못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예년보다 고가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로 백화점은 오랫만에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여기에 과일·채소 등 제수용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올해는 명절 상차림 배송 서비스도 인기다. 일부 호텔과 리조트에서는 여행과 차례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숙소로 차례상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장 5일간의 추석 황금연휴를 맞아 고향 대신 여행을 떠나려는 ‘추캉스족’이 늘면서 주요 관광지의 호텔·리조트 예약률이 평균 80%를 넘어섰고 백화점의 프리미엄 선물세트 매출도 두 자릿수 성장했다.
주요 관광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여름휴가를 미룬 이들이 추석 연휴에 몰릴 조짐이다. 여행업계와 주요 이커머스에서 집계한 전국의 호텔·리조트 예약률은 일부 지역이 이미 100%를 달성하는 등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제주도 5성급 호텔 예약률은 평균 70~80% 수준이며 충남 서해안 지역 리조트 예약률 100%에 육박했다. 김포와 김해에서 출발하는 제주행 항공기 노선의 예약률은 70∼80%를 기록한 상황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354명을 대상으로 ‘올 추석 귀성 계획’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열 명 중 여섯 명은 귀성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추석 승차권 예매율도 52.6%를 기록하며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귀성 포기’족이 늘어난 방증이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은 추석 선물의 고급화로 이어졌다.
신세계백화점이 실시한 추석 예약판매 결과 고가의 한우가 전년 동기 대비 47.3% 판매량이 늘며 프리미엄 선물 수요가 늘어난 것을 실감케 했다. 롯데백화점에서 선보인 이색 선물세트인 ‘프리미엄 生트러플 세트’는 이미 30% 이상 물량이 소진될 만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추성 귀성인구의 감소로 가장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유통업태는 재래시장이다. 코로나19 방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래시장을 찾는 발길이 가뜩이나 줄어든 데다 차례를 포기하는 ‘차포족’까지 늘어나서다.
농촌진흥청이 전국 소비자패널 94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결과를 실시한 결과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추석에 차례를 지낸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44.5%로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오를대로 오른 농산물 가격도 상인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농수산유통정보센터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18일 기준 사과(홍로) 10㎏ 도매가격은 9만140원으로 집계됐다. 14일 가격은 7만4060원으로 일주일 사이 약 20% 올랐다. 1년 전인 3만600원에 비하면 무려 3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배 가격도 배(신고) 15㎏ 도매가격이 6만3175원으로 1년 전 가격 3만8160원에서 2배가량 가격이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상차림 비용은 전통시장 23만9205원, 대형 유통업체 34만1747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전통시장은 5.1%, 대형 유통업체는 10.3%가 상승했다.
재래시장과 달리 농민들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농가 살리기 착한소비를 전개하면서 귀성인구 감소에 따른 판매 부진의 여파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백화점은 11일부터 30일까지 학교급식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친환경(유기농·무농약) 농산물 생산 농가를 위한 ‘함께해요, 착한 소비’ 할인 행사를 연다. 판매 물량은 약 10톤 규모다.
이마트는 이달 초 최상품부터 못난이까지 수확 물량 전체를 한꺼번에 사들이는 ‘풀세트 매입’으로 사과를 확보했고, 알뜰 배는 담당 바이어가 20곳의 농가를 직접 방문해 수확 현장에서 직접 사들였다.
세븐일레븐도 6월 경남 지역에 갑작스럽게 내린 우박으로 농작물 피해를 입은 과수 농가를 돕기 위해 ‘우박 맞은 사과’를 출시했다.
상차림 비용 부담으로 동원그룹 더반찬, 배민 등에서 전개하는 상차림 배달 서비스의 호응도 예상된다.
식품업계에서는 HMR로 간편하게 차례상을 차릴 수 있는 레시피를 공개하며 제수용품 구입 부담이 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동원그룹의 더반찬&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된 8월 말부터 일일 주문량이 이전보다 38% 증가했다. 대상 청정원의 정원e샵은 간편하게 준비하는 제수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일부 숙박업소에선 상차림 서비스를 제공하며 차례도 지내는 일석이조의 여행을 제안한다.
업계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도입해 주목을 받은 롯데호텔은 추석을 앞두고 ‘패밀리 개더링’을 선보였다. 패밀리 개더링은 명절 음식과 롯데호텔 서울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를 한번에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마스터 셰프가 손수 빚은 송편과 민어, 송이, 소고기 등 최상급 식재료를 이용한 명품전, 갈비찜, 양갈비, 랍스터 등 기본 메뉴에 스페셜 메뉴도 포함됐다.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5성급 호텔&리조트 메이필드호텔 서울의 한정식당 ‘봉래헌’은 ‘정성과 예를 갖춘 한가위 상차림’을 출시했다. 메이필드호텔 서울의 직영 농장인 ‘예산 농장’에서 공수한 유기농 식재료에 직접 담근 전통 장류(간장, 된장, 고추장 등)부터 손수 만든 과일청 등의 천연 조미료를 활용한 건강한 한정식이 제공된다.
한편, 추석을 앞두고 세대 간 갈등이 커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시행으로 이동을 자제하고 차례를 포기하려는 젊은 세대와 ‘그래도 차례만은 지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의견 대립이 SNS와 카페를 중심으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온라인 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이번 추석에는 당연히 집콕인데 어른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강남 8학군에 자녀를 기르고 있는 후배는 아이가 보균자가 될 경우 왕따 문제에 손해배상 등 문제가 많은데 조상을 제대로 안 모시고, 며느리 노릇 제대로 못한다며 타박을 받는다더라” 등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게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