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열전] 쑨퍄오양(孫飄揚)과 중후이쥐안(鐘慧娟) 부부

입력 2020-10-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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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신(藥神)’으로 불리는 중국 4위 부호

해마다 중국과 세계 부호의 랭킹을 발표하는 중국의 후룬바이푸(胡潤百福)가 2월 26일 밝힌 2020년 부호 랭킹에서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새로운 얼굴이 중국 부호 중 제4위에 올랐다. 바로 중국에서 ‘약의 신(藥神)’ 혹은 ‘약의 왕(藥王)’이라 불리는 부부, 쑨퍄오양(孫飄揚)과 그의 아내 중후이쥐안(鐘慧娟)이다.

부부가 각자 굴지의 제약기업 소유

이들은 각자 굴지의 제약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남편은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헝루이의약(恒瑞醫藥), 아내는 홍콩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한썬약업(翰森藥業)의 최고경영자(CEO)이다. 중국 의약업계에서 압도적인 1위 부호로 알려진 이들 부부는 2019년 처음으로 중국 부호 순위 5위에 올랐다. 2020년 후룬의 중국 부호 순위에서도 1, 2위는 역시 부동의 중국 부호인 텅쉰의 마화텅 그리고 알리바바의 마윈이었다. 그 뒤를 이어 4위의 자리에 오른 이들 부부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감염병이 휩쓰는 비상상황에서 한 계단 더 도약한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 부호들이 코로나 사태로 자산이 감소하는 가운데 쑨퍄오양과 중후이쥐안 부부는 그 역경을 기회로 삼아 자산을 크게 불렸다. 2020년 4월 현재 이들 부부 회사의 총가치는 무려 100조 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 사람’ 출신

쑨퍄오양은 그야말로 평범한 ‘보통 사람’ 출신으로 자수성가 기업가의 대표 격이다. 1959년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에서 태어난 그는 1982년 중국약과대학을 졸업한 후 롄윈강제약(連云港製藥廠)이라는 제약회사 공장에 기술자로 근무하였다. 롄윈강제약은 소독과 지혈용 약제를 생산하던 아주 작은 제약 공장이었다. 기술력도 매우 낮고 그저 단순 가공 및 생산을 주로 하는 곳이었다. 쑨퍄오양은 집안 배경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학에 다닐 때까지 남의 눈에 띌 정도로 탁월한 장점도 없는 너무나 평범했던 젊은이였다. 그래서 그는 웬만한 보통 대학생이면 쉽게 입당이 허용되는 공산당 입당조차 거부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성실하고 근면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맡은 바 직무를 하루하루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그는 일개 기술원(技術員)의 직위에서 출발하여 과학기술과 과장을 거쳐 부공장장이 되었고, 다시 공장장으로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

“내 기술 있어야 내 운명의 주인 돼”

쑨퍄오양이 공장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의 기술 수준은 낙후되었고 부가가치 역시 낮았다. 이대로 가서는 회사 발전의 기회는 전혀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연명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돌파구의 일환으로 신약 개발에 의욕적으로 착수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해오던 대로 하는 습관과 관행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편하기 때문에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는 것도 싫어하게 되는 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하였다. 어느 날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게 기술이 없으면 내 운명은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쑨퍄오양(왼쪽) 헝루이의약 CEO와 그의 아내 중후이쥐안 한썬약업 CEO. 이들 부부는 올해 후룬바이푸 중국 부호 랭킹 4위에 올랐다.

‘자주창신’ 기술력과 공익 강조

그러면서 그는 10년을 하루처럼 변함없이 전국의 모든 의약연구기관을 찾아다녔고, 각지의 시장 조사에 나섰으며 신약 개발을 조직해 나갔다.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10시간을 훨씬 넘겼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그의 회사는 20여 개의 신약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마침내 1996년 매출액이 1억 위안을 돌파하였다. 이어 1997년과 2000년에 그는 2억 위안을 투입하여 두 곳의 연구소를 세우고 본인이 직접 주임의 자리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항암약제와 심혈관약제, 마약성 진통제, 수술용 약제 그리고 다발성질병 치료제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쑨퍄오양은 1990년 회사에 남아 있는 모든 자금을 모아 ‘VP16’이라 칭해지던 항암주사제(針劑)의 특허를 사들였고, 이 주사제를 경구용 캡슐형으로 변화시켰다. 이 약제는 출시하자마자 시장을 석권하였고 쑨퍄오양은 약제업계에서 그 명성을 드날리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약의 왕(藥王)’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주창신(自主創新)의 기술력을 강조한다.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지력(智力)과 사회 총역량을 빌려 기업의 창신 공간을 확대해 나감과 함께 공익(公益)을 중시하였다. “기업은 사회의 경제 세포이자 동시에 사회의 중요 구성원입니다. 늘 민생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기업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응분의 책임과 의무라 할 것입니다.”

화학교사에서 中 최고 여성사업가로

쑨퍄오양의 아내인 중후이쥐안은 2020년 ‘후룬 글로벌 자수성가 여성 부호 명단’에서 당당히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중후이쥐안은 1982년 7월 쉬저우(徐州)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뒤 롄윈강의 옌안중학에서 화학교사로 일했다. 쑨퍄오양은 일찍이 1995년 사업 파트너와 함께 하오썬약업(豪森藥業)이라는 또 다른 제약회사를 세웠었다. 그 이듬해 중후이쥐안은 교사를 그만두고 창립자 신분으로 설립 1년째에 접어든 이 회사에 본격 합류했다.

중후이쥐안도 남편 쑨퍄오양과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 출신의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손꼽히는데, 그녀는 기업 관리와 기술에 능통하고 개척정신이 탁월한 기업가로 정평이 나 있다. 용인(用人)의 측면에서도 그녀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언제나 공정하고 공개적인 채용을 강조하며, 적재적소의 인재 기용을 원칙으로 사회에 널리 인재를 구했다.

장기적 안목과 국제 감각 갖춰

특히 그녀는 장기적인 사업 안목과 국제 감각을 두루 갖춘 여성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질인증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판단한 그녀는 2002년 회사에 FDA 인증 연구팀을 설치하고 자신이 직접 팀장을 맡았다. 이후 불철주야 팀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잔업에 잔업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03년 ‘무결점’이라는 탁월한 성적으로 미국 FDA 품질인증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2004년 미국을 위시한 구미 시장에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그녀 회사의 상품들이 수출되었다.

2020년 4월 현재, 한썬약업의 시총은 1643억9700만 홍콩달러(약 25조8284억 원)로 남편의 회사 헝루이의약의 시총과 합치면 약 99조 원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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