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죽어서도 싸우는 노동자

입력 2020-10-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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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무 힘들어요."

36세의 젊은 택배기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새벽 5시, 밥 먹고 씻고 한숨도 못 자고 바로 출근해 또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고 동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사망한 택배업계 종사자는 총 12명이다.

배송 업무 중 사망한 다른 택배기사는 산업재해 적용을 받지 못했다. 그는 택배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숨지기 불과 한 달 전에야 근무를 시작한 것으로 신고됐다. 입직신고를 하면 산재보험에 자동으로 가입되고, 그러면 사업주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년 일하다 사망하는 근로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입직신고’와 ‘산재 제외 신청’이란 첫 번째 벽을 넘어야 보상받을 길이 열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도 산재 인정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심사청구 및 결정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청구된 산재 심사는 총 4만2938건이다. 이 중 근로복지공단 본사는 지사의 결정을 뒤집고 6592건을 산재로 인정했다. 같은 기간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불복해 고용노동부 소속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1만5370건 중 2252건이 산재로 인정됐다.

문제는 법원까지 넘어오는 사건이다. 유족은 법정에서 배우자나 자녀의 죽음을 설명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 아픔을 다시 꺼내야 한다. 최근 5년간 공무상재해ㆍ산업재해로 접수된 행정소송은 1만214건에 이른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거쳐 고용노동부, 법원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제 산재와 관련한 관계 기관의 기계적인 결정은 없어져야 한다. 법원에서 산재로 인정한 판결을 분석해 비슷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법정까지 끌고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법원은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넓게 보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있다”며 “상당수가 법원까지 오지 않아도 될 사건들”이라고 지적했다.

중노동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이 죽어서까지 힘겹게 싸워야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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