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병철 선대회장 별세 후 CJ, 신세계 등 계열 분리
당장 계열분리 이뤄지진 않을 듯
이건희 회장 지분 상속받는 홍라희 여사가 ‘열쇠’
삼성그룹의 계열 분리 가능성은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실질적인 삼성 총수 역할을 맡고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계열 분리 얘기는 주춤했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25일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삼성의 계열 분리 가능성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1987년 별세한 이후 CJ, 신세계, 한솔그룹이 삼성에서 분리돼 나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각각 제지사업과 백화점사업을 들고나온 바 있다.
이번에는 이재용 부회장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 및 레저 부문을 맡고, 막내 이서현 이사장은 그동안 관심을 쏟았던 패션 부문을 계열 분리하는 시나리오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삼성 지배구조는 물론, 재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삼성의 지배구조 재편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재계에선 계열 분리 첫 번째 신호탄으로 호텔신라의 독립 가능성을 본다. 이부진 사장은 그간 호텔신라 지분을 전혀 갖지 않은 채,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해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지분 확보 능력이 있음에도 독립을 위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기간 유보를 택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동안 이부진 사장이 보여준 경영능력을 보면, 계열 분리 명분으로 삼을 만하다. 이 사장은 2001년 호텔신라에 처음 몸담은 뒤 2011년부터 근 10년간 면세·호텔업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2012년 2조2000억 원이던 호텔신라 매출은 작년 5조7000억 원으로 약 160% 증가했다.
특히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력을 평소 보여줬다. 호텔신라 뷔페식당의 한복출입이 제재당하면서 논란이 일었을 때 즉각 사과하고, 재벌 빵집이 논쟁거리가 되자 호텔신라의 베이커리 ‘아띠제’를 과감히 철수했다. 재계에서는 장남 이재용 부회장보다 오히려 이부진 사장의 경영 스타일이 이건희 회장을 많이 닮았다고 해서 ‘리틀 이건희’로 부르기도 한다.
호텔신라에 개인 지분이 없는 이 사장이 계열 분리를 시도하려면 호텔신라 지분을 매입하거나, 자신이 가진 삼성물산(5.6%)과 삼성SDS(3.9%)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의 것과 교환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다만 계열 분리를 시도한다 해도,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호텔·면세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무리한 독립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호텔신라는 올 1, 2분기 모두 6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냈다.
삼성 계열사 고위 관계자는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계열 분리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장기적으로는 독립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경영 안정화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이사장은 제일기획 경영전략 담당 사장,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맡아오다 지난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 이 이사장이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은 작지만, 향후 일부 계열사를 분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이사장은 삼성물산 5.6%와 삼성SDS 3.9%를 보유 중이다. 언니 이부진 사장과 보유 지분이 같다.
먼저 패션 부문에 애정을 갖고 경영을 이어갔던 이 이사장이 삼성물산 패션 부문을 독립시킬 것이란 얘기는 꾸준히 나오던 시나리오다.
다만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데다, 이부진·이서현(각 5.6%) 자매 외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17.48%나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5.0%), 삼성SDS(17.1%), 삼성생명(19.3%), 삼성바이오로직스(43.4%) 등 주요 자회사 지분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상 계열 분리가 쉽지 않은 구조다.
재계는 이 이사장이 경영 복귀 대신, 모친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뒤를 이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과거 경영전략 담당 사장을 맡았던, 제일기획을 계열분리할 가능성도 나온다.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 주식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계열 분리 등 지배구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회장의 유언장이 없다면 상속은 법정 비율대로 이뤄지는데, 이 경우 홍 전 관장이 삼성전자,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가 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이 회장이 유언장에 계열 분리 등을 언급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건희 회장 보유 지분에 대한 상속세 대부분은 삼성전자 보유 지분 상속에서 발생할 것”이라며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의 경우 상속받은 삼성전자 지분을 다 매각하고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계열 분리 수순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