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마이라이프 대표
올해는 어떤 사자성어가 어울릴까?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이목지신(移木之信)’을 추천한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상앙(商鞅)이 남긴 고사다. 그는 재상에 오른 뒤 도성 남문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그러고는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이에게 금화 50개를 주겠다”고 선포했다. 터무니없이 큰 상금에 다들 믿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나서서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금화를 줬고 그 뒤로 백성들은 그가 만들어내는 법령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루는 진 효공의 태자가 법을 어기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앙은 법에 따라 태자의 스승에게 경형(鯨刑,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 스승은 태자의 숙부, 즉 효공의 동생이었다. 상벌을 모두 법대로 엄격히 집행한 것이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감잡았을 것이다. 왜 이목지신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하는지. 이 정권이 스스로 공언했던 바를 번복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 공천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헌 제96조2항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5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만들어졌다. 당시 문 대표는 고성군수 재선거 지원 유세에서 “새누리당 전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가 돼 치러지는 재선거입니다.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후보를 내지 말아야죠”라고 공박했다.
이번에 서울·부산 두 곳의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것은 전직 시장들의 성 추문 때문이다. 따라서 당헌대로라면 민주당은 공천을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당헌 개정에 대한 찬반을 묻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치러진 당원 투표에서는 86.7%가 당헌 개정 및 공천에 찬성했다. ‘짜고 치기’식 투표로 공천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런 일련의 결정에 대해 “후보를 내고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판단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당내에서는 “기존 당헌은 유권자인 국민의 선택권을 막은 과잉금지라고 생각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실미도’ 속의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외침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사실 정부와 여당이 말을 뒤집은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소위 ‘문재인 정부 인사 기준’도 그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의 인사를 비판하며 인사 배제 5대 원칙(위장 전입·논문 표절·탈세·병역 면탈·부동산 투기)을 내걸었다. 하지만 집권 후 공직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2017년 11월 ‘고위공직 후보자 7대 기준’을 새로 발표한다. 5대 기준에 음주운전·성 관련 범죄를 추가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경우’만 인사에서 배제하도록 해 더 느슨해졌다. 그나마도 최근 서욱 국방부 장관의 사례(위장전입)가 보여주듯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좀 더 가까운 사례로는 등록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번복됐다. 정부는 2017년 8·2 부동산 대책에서 세제 혜택을 주며 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했다. 하지만 다주택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고 있다는 논란이 일자 지난 8월 법을 개정해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다. 정부 말을 믿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던 이들은 날벼락을 맞게 된 셈이다.
정권 초 속칭 ‘문빠’들 사이에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응원문구(?)가 등장했다. 처음 들었을 땐 웃자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해진다. 이번에 당헌 개정을 지지한 86.7%라는 숫자도 그들의 합창 소리처럼 들린다. 문빠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지금 우리 이니에게 필요한 것은? 이목지신의 자세!’라고. lim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