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당선인은 7일(현지시간)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의 야외무대에서 열린 대국민 승리 연설에서 화합과 단합을 강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미국의 분열을 극복하고 지지층 간 앙금을 씻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바이든은 “나는 자랑스러운 민주당원이지만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면서 “붉은 주(州)와 푸른 주를 보지 않고 오직 미국만 바라보겠다. 분열이 아닌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승리 확정이 길어지면서 양측 지지자들 간 긴장감이 고조되자 그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상대일 뿐이지, 적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인”이라면서 “끝없는 전쟁이 정치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바이든은 또 “미국에서 악마처럼 만들려고 하는 음울한 시대는 지금 여기에서 끝내기 시작하자”며 트럼프 지지자들의 실망감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그는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모든 이들이 오늘 밤 실망하는 것을 이해한다”면서 “나 자신도 두 번 진 적이 있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1998년과 2008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을 뚫지 못하고 낙마한 바 있다.
이처럼 바이든이 승리 연설에서 통합을 재차 강조한 데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미국이 극도의 분열 양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민주주의 모범 국가인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느냐며 각국에서 조롱과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당장 개표 과정에서 ‘개표를 중단하라’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모든 표를 빠짐없이 개표하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충돌했다. 오리건주에서는 폭력 사태까지 일어나 주 방위군이 배치됐고 성조기가 불타고 망치로 현금지급기를 부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백악관 인근 거리에서 칼에 찔려 크게 다치는 사건도 발생했다.
유세 과정에서도 갈등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무장을 한 채 민주당 주지사 납치를 모의했고 텍사스 도로를 달리던 바이든 후보 유세차량을 에워싸고 위협하는 일도 벌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사회는 지난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무장한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사건이 도화선이 돼 갈등에 휩싸였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주 방위군이 배치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내몰렸다.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지 않는, 그런 시늉도 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라면서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놓고도 미국은 ‘마스크’와 ‘노마스크’ 진영으로 갈라졌다. 트럼프는 코로나19 여파로 재선 가도에서 비장의 무기로 삼았던 경제가 흔들리자 바이러스 통제보다는 경제 정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주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비난하고, 마스크 착용조차 꺼리며 방역 지침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미국은 코로나19 확진과 사망에서 전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썼다.
바이든 측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과학자들의 조언을 경청하겠다며 마스크 착용은 물론 각종 행사나 유세 때도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 불안에 떨던 유권자의 신뢰를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패자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을 깨고 법적 분쟁을 예고한 상태다. 미국 내 갈등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가운데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과 단합을 얼마나 이끌어 내는가에 ‘바이든의 미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