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영의 미래토크] 디지털 전환의 필수 역량 ‘디지털 유창성(流暢性)’

입력 2020-11-12 17:58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한국외국어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컨설팅 미래전략연구소장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디지털 전환이 화두가 되었다. 2016년 한국사회를 포함하여 제조업 강국을 휩쓴 4차 산업혁명도 실상은 디지털 전환의 이음동의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모바일기술, 사물통신과 3D 프린팅,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멀티콥터 드론, 소형 위성 기술, 인공지능 로봇과 무인자동차 기술 등 디지털 기술의 폭풍은 모든 기업을 디지털 전환으로 내몰았다.

기업의 입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청년 시기의 군 입대이며, 신대륙으로 향하는 메이플라워호다. 디지털 전환은 불확실성을 가지며, 단기간 내에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기 어렵다.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을 시행하고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자마자 수익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의 임원은 가급적 디지털 전환의 시기를 늦추기 바란다. 심지어 NIMTO(Not In My Term Office, 내 임기 안에는 안 된다)를 보여주기 십상이다. 2~3년 임기의 임원에게 중장기 미래에 투자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현재 임원의 입장에서 자기 임기만 잘 버티면 되며, 디지털 전환은 다음 임기의 임원이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기업과 임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디지털 전환은 빈수레 같이 소리만 크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코로나19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언택트와 온택트는 기업 등으로 하여금 디지털 전환을 향해 100미터 달리기를 하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는 코로나19로 인해 “2년 걸릴 디지털 전환, 2개월 만에 이뤄졌다”고 했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과 공공기관은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Robotic Process Automation)를 도입하거나 인공지능을 개발하면서 디지털 전환의 시늉을 내는 데 그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공리에 이 거대한 여정을 진행하려면, 그래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의 임직원은 디지털 유창성을 높여야 하며 지적 겸손함을 단련해야 한다. 디지털 유창성은 디지털 기술의 개념과 가능성과 한계 등을 이해하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에 접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적 겸손함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쉽게 받아들이며,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응하게 하는 능력이다.

디지털과 관련된 역량은 디지털 문해력, 디지털 경쟁력, 디지털 유창성, 디지털 역량으로 나뉜다. 디지털 문해력은 비판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검색하는 능력과 멀티미디어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디지털 경쟁력은 멀티미디어와 스프레드시트 등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디지털 역량은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디지털 유창성이 디지털 기술의 개념과 가능성, 한계 및 기술 성숙도 현황 등을 이해하고 이를 비즈니스와 전략에 접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이들 능력은 공통분모가 없지 않으나 명료하게 나눌 수 있다. 정리하자면 디지털 유창성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 임직원, 특히 임원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개인적 경험이겠으나, 적지 않은 기업 임원의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놀라울 정도로 낮다. 즉, 디지털 유창성이 매우 낮다. 디지털 유창성이 낮은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을 주도한다면 나침반과 지도 없이 바다를 항해하겠다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의 개념과 세 번째 가을이 도래하는 이유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적절한 인공지능 개발팀이나 도입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블록체인이 가진 긍정적 측면과 기술적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즈니스에 블로체인 기술을 접목할 수 없다. 저궤도위성 기반 무선 인터넷의 의미와 발전 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의 차별적 경쟁력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없다. 디지털 유창성이 없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몽환적 상상력으로 판타지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것이며, 기술의 성숙 현황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국경을 디지털이라는 고속도로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리콘 밸리와 요즈마 펀드의 벤처기업에 안방을 내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기업의 소유주는 그간 유지해왔던 인적 관리의 원칙에서 벗어나야 한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그가 안전하게 머물러 있던 성공의 함정에서 과감하게 뛰쳐나가야 한다. 이제 기업의 소유주는 과거의 오른팔과 왼팔에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유창성이 있으면서 지적 겸손함이 있는 임원에게 그의 오른팔 정도는 내줘야 한다. 전환의 시대에, 탈바꿈의 시대에, 변혁의 시대에, 그런 용기와 깜냥은 갖추어야 한다. 이는 더 성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한 것이다.

전우들, 이 전쟁이 끝나고 다시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