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아 자본시장부 기자
정부가 내세운 상법개정안 핵심은 지배구조 개선이다. 대주주가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쥐고, 전횡을 휘둘러도 이를 막을 장치가 없다는 분석에서다.
문제는 일괄적인 법안을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적용하면서 중소기업 경쟁력을 낮추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이라는 지적과 상통한다. 대다수 중소기업은 복잡한 지배구조 문제보단 대기업에 종속된 하청관계에서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법안의 핵심이 중소기업을 비켜간 상태에서 대기업 기준으로 만들어진 규제를 일괄 적용받는 셈이다.
우선 다중대표소송 도입의 경우,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일수록 방어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개정안은 모회사의 1% 이상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이 가능하도록 개정하는데, 대다수 중소기업은 소송대응 여력부터 부족하다.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자회사 주주권리가 상대적으로 침해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안 역시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개정안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태에서 처음부터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선출하도록 한다. 최근 KMH와 경영권 분쟁일 벌인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PE)는 특수목적법인(SPC) 6곳을 설립해 지분을 쪼개고, 감사선임 시 적용받는 대주주 3% 의결권 제한을 비켜간 바 있다.
상장회사의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선택적용 역시 투기 세력의 공격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며 법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소 6개월 보유기간을 충족하지 않아도, 1~3% 지분만 사들이면 3거래일 후 주총소집요구, 대표소송 제기권 등을 주장할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해 적대적 M&A 등 시총 규모가 작은 중소 상장사에게 남용될 소지가 크다.
상법개정안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소수주주 구제라는 목표를 내세웠다면, 최소한 기업 체급별로 나눠 향후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현실의 규칙에 ‘네고왕’이 필요한 때다.